방명록


제게 자유롭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 분들은 이 게시물에 댓글을 달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FA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 야구


1. 한국야구에서 FA로이드는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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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에이전트(free agent)가 되는 해를 앞둔 선수들은 높은 성적을 얻음으로써 원소속 구단과의 우선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고, 일이 여의치 않을 경우 다른 구단의 러브콜을 쉽게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선수들은 FA 전 해에 가능한 한 다른 해보다 더 좋은 성적을 얻길 원한다. 그리고 실제로 FA 전 해에 반짝하면서 다른 팀을 홀리는 경우도 가끔 나타나는데 야구팬들은 이를 가리켜 FA로이드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렇다면 한국야구에서 FA로이드는 존재할까?

FA제도가 창설된 2000년부터 당해 계약자들이 현재까지 대략 1.7시즌 뛴 2008년 사이에 3년 이상의 다년계약을 체결한 타자 FA 26건을 대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굳이 3년 이상으로 조건을 다는 이유는 1년이나 2년 계약일 경우 노장의 마지막을 챙겨 주는 퇴직금성 계약이나 B급 타자들을 1~2년 더 써먹으려는 단발성 계약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먼저 walk year, 즉 FA 자격을 얻는 해에 그 이전까지의 3년에 비해 월등한 퍼포먼스를 보여 준 Best 5를 골랐다. 정렬 기준은 타자의 득점 생산력을 출루율 스케일로 나타낸 wOBA라는 지표이다(wOBA에 대해서는 여기를 참고하시기 바람).



너무 오래 전이라 잊혀진 한국야구 타자 FA 1호 김동수가 눈에 띈다. 그 밑으로는 야구팬 대다수가 예상했을 FA로이드의 예시라 할 만한 선수 두 명이 차례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특히 김민재의 경우 wOBA의 수준은 평균 이하이지만 FA 자격을 얻는 해에는 그럭저럭 평균까지는 올라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타격이 리그 평균수준이면서 뛰어난 수비를 가진 유격수는 FA 시장에서 매력적이다.

다음은 대박을 노리고 싶었는데 폭삭 망한 케이스, Worst 5.



현대가 박경완을 내보낸 것은 자금의 문제도 있었지만 포수로서 1,000게임 넘게 출장한 박경완이 노쇠화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의구심이 주된 원인이었다. 심정수와 장성호는 원 소속팀에서 맹활약을 보이다가 하필 FA 바로 전 해에 부상과 부진으로 불운을 겪은 케이스. 그나마 그 "부진"도 리그 평균은 충분히 뛰어넘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전체 26건 중 FA 전 해에 유의미하게 기량이 상승/하강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각각 얼마일까? wOBA의 연간 오차범위는 약 6~7% 정도이다. 즉, 타자의 wOBA가 전 해에 비해 6~7% 범위 내에서 변화했다면 그 정도는 대략 동일한 실력을 유지하면서 발생하는 오차로 볼 수 있다.

상승률 7% 이상을 대박, 상승률 -7% 이하를 쪽박, 그 사이를 중박이라고 하면 26건 중에서 대박은 6건, 쪽박도 6건, 중박은 그 나머지인 14건이다. 일반적인 생각만큼 타자들이 FA 전 해에 항상 미친 성적을 거두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사실 FA만 보고 8년 동안 달려온 선수들이 9번째 해에는 예전보다 훨씬 나은 성적을 거두리라고 확실하게 콕 찍어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2007년의 조인성이나 2001/2005년의 김민재와 같은 운 좋은 케이스, 혹은 2004년의 심정수처럼 눈에 띄게 운 나쁜 케이스가 부각되는 경우는 있지만 FA 역사 전체로 보면 꼭 FA 전 해라고 해서 그 전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두는 타자는 많지 않다.



2. 계약하고 보니 뽀록

FA로이드와 마찬가지로 walk year의 wOBA와 "축 계약" 이후 3년의 wOBA를 비교하면, FA 전 해 혹은 전성기의 성적을 기대치로 잡고 계약한 구단들이 얼마나 실망했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다음은 walk year와 비교했을 때 지나치게 평범한 기록을 거둔 선수 Best 5명.



아까 FA로이드 5인방 중 올해 대폭발하고 있는 조인성을 제외한 1~3위가 고스란히 포함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김민재는 그야말로 "행운의 사나이"로 불릴 만 하다. 김기태는 뒤에서 따로 언급.

반대로 FA 직전에는 폭삭 망했다가 계약하고 나서 다시 안정을 찾은 선수 Best 5명도 소개한다.



여기에도 앞에서 본 선수들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다. 특히 박경완은 2002년에 잠시 어라? 하는 성적을 거둔 후 2003년부터 바로 제자리로 되돌아왔고, 심정수와 장성호의 경우도 전성기의 포스는 아니지만 사실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뒤에도 나올 안경현은 모범적인 FA 계약의 사례라 할 만 하다.

뽀록 Best 5와 복귀 Best 5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사실 FA의 본질과 관련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커리어 전체에 비해 지나치게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는 그 다음 해 매우 높은 확률로 제자리를 찾아가며, 커리어 전체에 비해 지나치게 나쁜 성적을 거둔 선수도 마찬가지라는 평범한 교훈이다. FA 계약을 체결하고자 하는 팀이 굳이 새겨들을 점이라면, "FA 전 해에 커리어보다 지나치게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와 계약하려면 기대치를 낮추고, 만일 그 성적을 계속 찍을 것을 구단에서도 기대한다면 차라리 계약을 접는 것이 좋다" 정도일 것이다. 지나친 행운과 불운은 오래 가지 않는다. 특히 최절정기가 지난 상태에서 FA를 맞이하는 한국에서는.



3. 최악의 먹튀는 누구인가?

먹튀의 기준은 "계약 직전 해에 비해서 계약 후 폭삭 망한 선수"와 "계약 전의 3년간 커리어에 비해서 계약 후 폭삭 망한 선수"의 두 가지로 잡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팬들이 쓰는 먹튀의 용례는 전자이지만, 한 해의 성적은 몇 해의 성적에 비해 기복이 심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기준을 전자로 잡으면 한국야구에서는 먹튀가 아닌 선수들이 거의 없다.

따라서 기준을 후자로 잡고 "그 전 성적과 비교했을 때" 먹튀 5명을 선정하면 다음과 같다. 연봉의 요소는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성적만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연봉과 이미지까지 감안한다면 결과를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야 내가 홍현우 마해영보다 위라고?.jpg


1위가 충격적인가? 사실 김기태는 억울하다. 왜냐하면 2~5위의 선수들은 풀 시즌으로 보면 채 2년도 채우지 못하고 그냥 선수생활을 끝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반면 김기태는 2002~2004년까지 꾸준히 활약했으며, 그가 골든글러브를 차지한 2004년은 위 표에서 제외되어 있다.

또 김기태는 계약 이전까지 "너무 잘 하는 선수"였다(심정수도 그렇지만). 너무 잘 하던 선수가 평범한 선수가 되었다고 욕하는 것은 적당히 잘 하는 선수가 평균 이하의 선수가 되었다고 욕하는 것보다 억울한 일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역대 최악의 FA는 역시 그 분이다.


역사에 남을 3루수에서 먹튀의 대표사례로


그러나 삼성 입장에서는 김기태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

1) 김기태의 계약액수(4년 18억)는 홍현우와 동일하다.
2) 김기태는 계약한 팀인 삼성에서 2001년 최악의 성적을 남기고 이후 트레이드되었다.

만일 요즘 2001~2003년 심정수 레벨이던 선수가 4년 35억 정도의 계약 후 2004~2006년 마해영급의 선수로 변신했다면 내년에 부활하기 전까지 그 선수는 얼마나 많은 욕을 먹게 될까? 김기태의 당시 계약은 적어도 삼성에게는 되돌아보면 그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시간은 모든 것을 치유해 준다.

나머지 선수들은 역시나 그런갑다 하는 선수들이 나열되어 있다.



4. 모범 FA 계약사례

반대로 FA 계약 이후 오히려 알짜 활약을 해 준 선수는 누구일까? 사실 많이 고르고 싶었으나 3명밖에 찾지 못했다. FA 계약 이후 성적이 나아진 선수들이 이 3명뿐이라서.



이 쪽도 1위가 충격적인가? 사실 2009년 계약까지 포함하면 홍성흔이 1위, 누적stat을 고려하면 양준혁이 1위이긴 하다. 그러나 조인성이 2010년 시즌을 이 페이스로 마감할 것이 확실시되는 시점에서 LG는 일단 본전은 훨씬 넘게 뽑아먹은 셈이다.

다 늙어서 계약하는 FA에 그전까지보다 잘 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wOBA의 오차범위 내에서, FA 계약 이후 이전과 비슷한 성적이라도 거둬 준 선수를 찾아보았다. 이번에는 꽤 많다.



그럭저럭 FA 성공작이라고 할 만한 선수들이 모여 있다. -7% 이내의 성적 변화는 선수 개개인의 노쇠화를 고려하면 사실 충분히 허용할 수 있는 범위이기도 하다. 다만 정수근의 경우가 눈에 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비율성적으로 따져서 그렇지 사실 정수근은 누적을 고려하면 욕 먹을 만 하다. 그러나 정수근의 기량 자체는 FA 이전과 이후에 큰 변화가 없었다.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정수근에게 매년 3할 50도루를 기대했다는 점, 계약 액수가 6년 40억 6천만원이었다는 점, 정수근이 몇 번의 큰 사고를 쳤다는 점이다.

잘 하는 선수들 가운데 약간 다르게 꾸준함을 측정해 보자. 다음은 계약 전과 계약 후 공히 wOBA .360 이상의 성적을 찍어 준 선수들이다. "꾸준하지 못했던" 심정수와 이호준은 제외하였다.



꾸준한 선구안과 타격능력의 보유자 3명과 최고의 포수가 이름을 올렸다. 여기에다가 위에서 언급한 조인성, 박진만, 안경현과 2009년 이후의 홍성흔을 더한 정도가 모범 FA 계약사례가 될 것이다.



5. 추신: 투수는 왜 없나요?

원래는 투수도 알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조사하는 과정에서 의욕을 잃어버렸다. 더 잘 하는 것은 고사하고 수준이라도 유지한 선수가 송진우조웅천 단 두 명뿐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선수는 완전히 먹튀라든가, 약간 먹튀라든가, 성적이 나아지긴 했는데 원래 별로 많이 안 던지던 경우(가득염)뿐이었다. 특히 이강철, 진필중, 박명환 등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분들은 홍현우 마해영보다도 더했다(2002년의 이강철도 물론 포함해서).

결론은 하나뿐이다. 26세의 류현진이 아닌 이상에야 현 FA 제도하에서 투수 FA 계약은 바보짓이다.



※ 모든 통계는 Statiz(http://www.statiz.co.kr)에서 참고했습니다.


한국프로야구 역대 투/타 MVP (2) 야구

이 글은 1982년부터 2009년까지 한국프로야구를 되짚어 가며 시즌별 최우수 투수/야수를 선정하는 글입니다. 기본적으로는 그 해에 활약했던 많은 명 선수들의 기록을 되새기려 하고, 실제 그 해에 뽑혔던 MVP 혹은 골든글러브 투수부문 수상자가 제대로 선택되었는가에 대한 비평도 겸합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투수와 야수를 각각 1명씩 구분하여 선정합니다. 투수와 타자/수비수를 제대로 비교하는 일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단, 최고 야수(field player)의 선정에서는 타격뿐 아니라 수비 포지션 또한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이며, 모든 분석에서는 기본적인 구장효과에 따른 조정(park adjustment)도 겸합니다.

모든 그림은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용어 설명(투수)

WHIP: 평균 주자출루허용, 9이닝 당 내보내는 주자의 수
FIP: DIPS 이론에 따른 수비 무관 평균 자책점. 피홈런, 탈삼진, 볼넷허용으로 재구성
PR: Pitching Runs. 같은 이닝을 던진 리그 평균의 투수에 비해 몇 점이나 덜 허용했는가
PR_adj: 조정 PR. 구장효과를 고려.
HR/9, SO/9, BB/9: 9이닝당 피홈런, 탈삼진, 볼넷허용

용어 설명(타자)

EqA: Equivalent Average. 시대별 투고타저/타고투저와 구장효과를 고려한 타자의 종합적인 생산력
wRC: Runs Created based on wOBA. wOBA를 바탕으로 한 타자의 득점공헌도
wRC_adj: 조정 WRC. 구장효과를 고려.
Pos+/-: 포지션별 수비 난이도를 고려한 조정. 각 포지션 간 평균적인 난이도 차이를 바탕으로 함(해당 포지션에서 선수의 수비능력을 판단하거나, 각 포지션 선수들의 타격능력을 고려한 지표는 아님). 162경기 기준으로 포수 +12.5, 유격수 +7.5, 2루수/3루수/중견수 +2.5, 좌익수/우익수 -7.5, 1루수 -12.5, 지명타자 -17.5.
wRC*: 포지션별 수비 난이도를 포함한 조정 wRC



1985년 투수 MVP


김시진은 1980년대 한국프로야구와 삼성라이온즈를 대표하는 에이스이다. 그러나 "최초의 100승"을 비롯하여 김시진이 쌓아올린 누적성적의 휘황찬란함은 상당 부분 항상 리그 팀 득점 1, 2위를 기록해 준 팀 타자들 덕분이었다. 단 1985년을 제외할 때의 이야기. 1985년의 김시진은 리그 최강의 팀에서 리그 최고의 활약을 보인 선발투수이자 구원투수였다. 269 2/3이닝과 201탈삼진은 그의 커리어 최고기록이자 역대 삼성라이온즈 프랜차이즈 최고기록이기도 하다. 2.00의 방어율과 .189의 피안타율은 111이닝을 던진 루키 선동열을 제외하면 리그 1위.

김시진과 함께 25승 듀오를 결성한 김일융은 김시진보다 약 40이닝을 덜 던지면서 더 많은 홈런을 허용했고 삼진은 덜 잡아냈다. 그러나 이것도 김시진과 비교할 때나 할 수 있는 말이다. 1985년의 최동원은 1984년만큼 폭발적인 맛은 덜했지만 여전히 위력적이었다. 김시진보다 더 전천후로 출격한 그는 선발로 나오면 대부분 완투했으며(17경기 선발출장 14완투), 경기당 2개의 볼넷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제구력을 바탕으로 뿌려대는 강속구의 위력은 김시진보다 더 강했다. 평균자책점이 2점 이하이면서 FIP가 그보다 더 낮은 경우는 선동열을 제외하면 한국야구에서 두 번 나왔다. 하나는 1985년 최동원, 또 하나는 1986년 최동원.

그리고 선동열. 한국화장품과 해태 타이거즈 사이에서 온갖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후반기부터 어렵게 출전하기 시작한 선동열은 그 탓에 최우수신인상은 이순철에 넘겨 주었다. 그러나 사실 그 해 최고의 신인선수는 선동열이었다. 하긴 111이닝이면 그 당시 기자들에게는 미덥지 못한 숫자였을지도 모르겠다. 1.70의 방어율과 0.85의 WHIP, 9이닝당 탈삼진(8.35)은 당연히 리그에서 최고의 기록이며 PR은 두 배나 많은 이닝을 던진 김일융보다도 높다. 김시진과 최동원이 성적으로 선동열을 앞선 해는 1985년이 유일하다.



1985년 야수 MVP


흔히 이 해의 MVP는 기자들의 표가 이만수와 장효조로 갈려 김성한이 어부지리로 수상했다는 식의 "해프닝"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김성한은 홈런, 장타율, 최다안타 부문에서 1위, 타율과 출루율에서 3위를 기록한 좋은 선수였으며 충분히 MVP를 수상할 만한 자격이 있었다. 다만 유력한 경쟁자였던 우승팀의 두 선수가 각각 포수와 우익수였던 데 반해 김성한은 1루수였다는 것이 문제.

김성한은 이만수와 장효조보다 조금 더 많이 타석에 들어섰으며 그 결과 OPS 30포인트 차이가 나는 장효조와 김성한의 wRC는 동일하다. 또한 대구구장은 광주구장보다 더 타자 친화적이었다. 따라서 포지션이 1루수라는 점을 감안해도 김성한은 장효조와의 승부에서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그러나 또 다른 경쟁자인 이만수는 비율지표에서 김성한과 거의 비슷한 기록을 남겼으며 103경기에 나선 포수는 105경기에 나선 1루수보다 더 가치 있다. 만일 포수 대체자원과 1루수 대체자원까지 고려한다면 차이는 더 커질 것이다. 물론 1루수들 가운데 김성한의 수비는 포수들 가운데 이만수의 수비보다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차이가 앞에 기록한 모든 격차를 상쇄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1986년으로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언급할 점이 있다. 1986년에서 1995년까지 10년간의 투수 MVP는 1992년과 1994년을 제외하면 모두 선동열이다. 따라서 이하 투수 MVP 글에서는 선동열은 그의 위대함을 매년 칭송하는 것으로 제쳐 두고, no. 2가 누구였는가를 중점적으로 논할 것이다. "일단 선동열은 빼고 이야기합시다."



1986년 투수 MVP


아무리 선동열이 잘 던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해도 1986년의 선동열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0.99의 평균자책점은 그 때까지의 모든 투수들 가운데서 가장 낮은 기록이었으며 8번의 완봉 또한 지금까지 깨지지 않았다. 피홈런 2개는 "고작" 111이닝을 던진 1985년, 162이닝을 던진 1987년과 똑같다. 또한 선동열은 같은 262 2/3이닝을 던진 리그 평균수준의 투수에 비해 약 62점을 더 막아냈는데, 이는 그 해 no. 1, 2의 야수인 이광은과 한대화가 리그 평균수준의 타자에 비해 더 얻어낸 점수의 합과 거의 동일하다. 한 마디로 어떻게 24승을 했는가보다 어떻게 6패를 당했는가가 더 궁금한 기록. 사실 6패 중에 5패는 완투패였으며 그 중에는 13이닝 14탈삼진 완투패, 식중독 걸린 상태에서 완투패, 최동원과 맞대결해서 완투패 등이 포함되어 있다.

선동열을 논의 대상에서 제외한다면 최고의 투수는 단연 최동원이다. 선동열의 위대함에 가려져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해 최동원은 선동열과 거의 비슷한 이닝을 소화했고 탈삼진과 볼넷허용도 거의 동일하다. 단 인간답지 않은 선동열의 피홈런에 비해 최동원의 피홈런 기록은 그래도 인간에 가까웠다는 것이 문제. 선동열과의 맞대결 기록은 1승 1패였다. 최일언과 김건우의 기록도 놀라운 수준. 선과 최의 압도적인 파워에 밀리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참고로 이 해 한국리그에서는 김용수(1.67)와 장호연(1.90)까지 포함하여 총 6명의 투수가 규정이닝을 채우면서 1점대 방어율을 기록했는데 이는 단일시즌 최다기록이다. 그리고 선동열을 제외한 1점대 방어율 투수가 다시 나오기까지는 5년이 걸렸다.



1986년 야수 MVP


비율성적으로 놓고 보면 이광은은 한대화, 장효조, 김봉연에 비해 딱히 나은 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해였다면 평범할 기록인 이광은의 출루율(.379)은 장효조와 김종모에 이어 리그 3위에 해당하며 장타율(.480) 또한 김봉연과 한대화에 이은 리그 3위이다. 그리고 MBC의 홈 구장은 1984년부터 잠실이었다. 타자로서의 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누적지표인 wRC에서 이광은은 1986년 최고였으며 그가 드넓은 잠실의 슬러거였음을 고려하면 다른 타자들과의 격차는 더 커진다. 물론 좌익수는 수비하기가 그리 어려운 포지션은 아니다. 그러나 이 해 그의 경쟁자들 가운데 포수나 유격수, 중견수는 없었다.

"발전이 없었던 베테랑" 장효조의 OPS .903은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리그 1위의 기록. 장효조는 1986년 이후로도 6시즌을 더 뛰며 2번의 좋은 기록을 남기지만(1987, 1991년) 그가 OPS 1위를 차지한 것은 이 해가 마지막이다. 홈런과 타점에서 1위를 기록한 해태의 대표적인 슬러거 김봉연 역시 1986년이 마지막 불꽃이었다. 1986년을 기점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한 이적생 한대화가 김봉연과 같은 선상에 오른 것은 그래서 매우 인상적이다.



1987년 투수 MVP


1987년의 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는 23승을 거둬 다승 1위를 차지한 삼성의 김시진이었다. 그러나 1987년 김시진의 평균자책점은 평범(3.12, 18위)했으며 이닝(193 1/3, 7위), 탈삼진(113, 4위) 등에서도 딱히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다승 1위, 선발출장 1위와 함께 그가 1위를 차지한 또 다른 부분은 볼넷허용(96)이다.

선동열은 1986년의 압도적인 선발투수에서 "전천후 투수"로 보직을 변경했지만 그래도 리그 최고의 투수였다. 선동열을 열외로 치면 최고투수 후보는 세 명. 신생 팀 빙그레의 에이스 이상군은 1983년 장명부 이후 가장 많은 완투를 기록했으며 엄청난 이닝을 큰 무리 없이 소화했다. 단 "삼진을 잡으려면 공을 세 개 던져야 하지만 맞춰 잡으려면 1개면 된다."는 그의 지론처럼 피홈런이 많고 탈삼진이 적었던 것은 흠.

최동원은 롯데에서 그의 커리어 마지막을 불태웠으며 탈삼진에서 여전히 압도적인 면모를 보였다. 평균자책점과 FIP의 격차가 말해 주듯이 높은 방어율과 많은 패배는 불운에 가깝다. 한희민의 이닝은 이상군과 최동원보다는 적지만, 그 사이에서 "중용"의 미덕을 지켜 주는 것이 매력. 세 명의 투수 모두 no. 2가 될 자격이 충분히 있다. 굳이 한 명을 고르라면 최동원을 꼽겠다.



1987년 야수 MVP



"팀 타율 3할"의 라이온즈에서만 3명의 좋은 타자들이 경합한 시즌.

1987년 MVP 수상자인 장효조의 타율(.387)은 1994년 이종범 이전까지 최고의 기록이며 명불허전의 출루율(.461) 또한 압도적인 수준이다. 그러나 장효조의 베스트 시즌은 1987년이 아니라 1983년이었다. 그 다음으로 좋았던 시즌은 1985년. "뒤에 만수가 있기 때문에 굳이 홈런을 칠 필요는 없었다."는 이유를 고려하더라도 2개의 홈런은 너무 적다. 또한 그와 경합했던 김성래와 이만수의 포지션은 각각 2루수와 포수였다.

김성래와 이만수의 공헌도를 비교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OPS와 EqA를 비롯한 공격의 효율성은 "포수" 이만수가 더 뛰어났지만, 2루수 김성래는 이만수보다 14경기 많이 나왔다. 모두 같은 구장에서 뛰었으므로 구장효과를 무시하고 포지션 조정을 감안하면 이만수의 승리. 김성래와 이만수의 수비 공헌도를 고려하면 최종평가는 박빙이나 다름없다. 둘 중 한 명을 꼽는다면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김성래.



※ 모든 raw stat은 Statiz(http://www.statiz.co.kr)를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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