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피니트 스트라토스 Infinite Stratos (2011) ★★
원작 / 출판사
유미즈루 이즈루(弓弦イズル) / MF문고J(MF文庫J)
감독 / 제작사
키쿠치 야스히토(菊地康仁) / 에이트 비트(エイトビット)
방영횟수
총 12회 + OVA 1회
한국 방영 정보
애니플러스(Aniplus) 한국어 자막판 동시방영(2011)
출연
우치야마 코우키(内山昂輝) … 오리무라 이치카(織斑 一夏)
히카사 요코(日笠陽子) … 시노노노 호키(篠ノ之 箒)
유카나(ゆかな) … 세실리아 얼콧(セシリア・オルコット, Cecilia Alcott)
시모다 아사미(下田麻美) … 팡 링인(凰 鈴音)
하나자와 카나(花澤香菜) … 샬롯 듀노아(シャルロット・デュノア, Charlotte Dunois)
이노우에 마리나(井上麻里奈) … 라우라 보데비히(ラウラ・ボーデヴィッヒ, Laura Bodewig)
토요구치 메구미(豊口めぐみ) … 오리무라 치후유(織斑 千冬)
시타야 노리코(下屋則子) … 야마다 마야(山田 真耶)
타무라 유카리(田村ゆかり) … 시노노노 타바네(篠ノ之 束)
저는 여러 여자들이 겉보기에 아무 매력도 없는 한 남자를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붙어 다니면서 난리치는 이러한 장르의 애니메이션이 그 자체로 “급이 떨어진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틀에 박힌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그 이야기를 일단 틀에 “제대로” 박아 넣는다면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니까요. 이는 애니메이션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닙니다(오히려 애니메이션 시청자들이야말로 이런 형태의 “수작”에 가장 평가가 박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에드가 앨런 포나 J. R. R. 톨킨처럼 그 틀을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들기라도 한다면 최고가 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기존에 주어진 어법이나 규칙을 충실히 따라가도 얼마든지 좋은 즐길 거리는 탄생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규칙을 조금 비틀어서 독창적이고 신선한 느낌을 준다거나, 여러 장르의 관습을 자유롭게 넘나든다거나, 장르를 이야기하면서도 보다 보편적인 인간과 사회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는 물건을 만든다면 오죽이나 좋겠지만, 그런 작품은 1년에 한 개도 나오기 어려울 겁니다. 너무 높은 기준이죠.
그렇다면 인피니트 스트라토스는 하렘(harem)물의 왕도를 제대로 따라가고 있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이 작품은 실패한 하렘물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작품은 하렘물이라는 주어진 틀에 자기 자신을 제대로 때려 박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야기가 매우 엉성합니다. 하렘물에 무슨 이야기 타령인가 싶을 수도 있는데, 하렘물의 기본은 여러 여자가 “멋도 없고 재미도 없지만 착한 남자 하나”에게 뿅뿅 하트를 날려대는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것입니다(여기서 “설득력 있게”란 이른바 “소설의 진실성” 같은 것이 아닙니다. 진실성을 따진다면 애초에 하렘물 같은 장르가 성립되기도 어렵겠죠). 그리고 그 설득력은 남주인공의 단편적인 매력, 예쁘고 귀엽고 가슴 크고(혹은 작고) 성격도 좋은(내지는 각양각색인) 여주인공들이 이 남자에게 빠져드는 과정의 구체적인 서술, 그 과정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로 담아낼 만한 갈등의 존재 여부와 그 완성도라는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집니다.
남주인공부터 보도록 할까요? 오리무라 이치카는 이 장르의 위대한 선배인 모리사토 케이이치(“오! 나의 여신님”)나 최근작 중 참고할 만한 캐릭터인 유우키 리토(“toLove 트러블”)와 겉보기에는 비슷해 보입니다. 기본적으로 내성적인 성격에다,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고, 여자들이 달려들어도 목석마냥 자기 할 일에 충실하고, 그러면서도 성격은 무난한 그런 캐릭터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자만 우글우글한 사관학교에 들어온 이 남자 캐릭터의 완성도는 모리사토나 유우키에 비해 상당히 부족합니다. 모리사토와 유우키는 숫기가 없고 아주 잘생기지도 않았지만, 단편적인 매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현실의 남성들이 대부분 결여하고 있는 여자에 대한 진심어린 배려라는 무기죠(이런 무기가 아무에게나 갖춰질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 주는 것도 오타쿠 마케팅에서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오! 나의 여신님”과 “toLove 트러블”에서 이러한 단편적인 매력들은 아주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일상적인 묘사를 통해 조금씩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러한 묘사가 조금씩 쌓이면서 가랑비에 옷 젖듯 설득력도 조금씩 생겨나죠.
하지만 본 작품의 목석 오리무라 이치카에게 그런 매력이 있는가, 내지는 그런 매력을 드러낼 만한 에피소드가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단 말입니다. 이 친구는 일단 착해 보이고, 여자에게 함부로 대하지는 않는 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최소한의 배려심을 드러내는 장면도 부족하고, 여자 캐릭터들이 몰입하게 되는 계기를 제대로 제공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로또 당첨과도 같은 확률과 누나의 빽으로 여자들만 다니는 학교에 들어와서는 그냥저냥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고등학생에 불과합니다. 한 마디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매력적인 여자 캐릭터들이 이 친구에게 빠져드는 과정 역시 뭔가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무슨 추리소설 급의 논리성을 기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장르 안의 법칙에만 충실하면 됩니다. 그렇지만 다섯 명이나 되는 여자들 중에서 “최소한의” 개연성을 갖춘 스토리가 있는 캐릭터는 샬롯 듀노아 한 명뿐입니다. 소꿉친구 1(시노노노 호키)과 소꿉친구 2(팡 링인)이야 그렇다고 쳐도(이것도 한심하지만), 일관성 있게 주인공을 무시하던 세실리아 얼콧이나 주인공을 거의 원수 취급하던 라우라 보데비히가 주인공의 사랑 쟁탈전에 투입되는 과정은 당황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개연성은 당연히 없고, “사랑에 빠져드는 과정”에 대한 묘사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큐피드가 쏜 화살을 맞은 여자들도 이 정도로 그냥 남자를 사랑하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줄거리 전반입니다. 사실 설정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각국 정부가 개발제한협정을 마련할 정도로 파괴력 있는 무기를 여자들만 몰 수 있게 되었다는 배경은 여전히 불만스럽지만, 그래도 넘어가 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배경을 무기 삼아 우리의 남주인공은 세계의 우수한 형질을 가진 여자들이 모두 모여드는 사관학교에서 다양한 국적의 알록달록한 여자들과 자연스럽게 교제할 수 있게 되니까요. 게다가 남주인공이 자기가 모는 기체를 통해 연습시합에서 여주인공을 패배시키는 과정 등의 묘사는 그 자체로 성적인 은유를 거리낌 없이 활용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나를 쓰러뜨리다니 정말 대단해. 이치카 군…….” 이런 식으로 말이죠. 무슨 바다표범 무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까지 들 지경입니다.
문제는 이런 설정을 가지고 이야기를 제대로 전개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사실 이 작품은 메카닉 애니메이션의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냥 학교가 아니라 특수한 목적을 지닌 사관학교라는 점, 주인공들이 조종하는 기체의 특성을 다양하게 만들어서 스토리를 다채롭게 만들 수 있다는 점, “외부의 적”과 같은 요소를 통해 주인공과 여캐릭터들의 심리적 일체감을 굳건히 할 수 있다는 점 등의 무한한 가능성은 죄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엉성하게 지나가거나, 아예 무시되어 버립니다. 사관학교의 분위기는 그냥 학교나 진배없고, 메카들은 뭔가 차이가 있긴 있는 것 같은데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느낌을 주며, 심각한 요소는 마지막에 잠깐 나오긴 나오는데 그 완성도 역시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애니메이션은 하렘물로서의 장점이 아예 없는가? 그건 아닙니다. 만일 그랬다면 DVD와 블루레이를 합쳐 각 권 당 평균 3만 장을 넘기는 말도 안 되는 판매량은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답은 여자 캐릭터들의 “속성”에 있습니다. 사실 스토리가 망가진 하렘물에서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여기뿐이죠. 불행 중 다행으로 여자 캐릭터들의 애니메이션 디자인은 최소한 중간 이상은 가고, 성격적 속성도 그럭저럭 다양하게 부여된 편이며, 무엇보다도 “국적”이라는 뚜렷한 요소가 있습니다. 특히 바보스러울 정도로 고정관념에 충실한 영국, 프랑스, 독일 출신 여학생들의 묘사는 장르 내의 기준에서는 그다지 나쁘지 않습니다. 영불동맹을 연상시키는 장면에서는 실소가 나오긴 했지만.

또 하나의 원동력은 성우입니다. 사실 연기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이것 역시 별로 좋은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는 성우들의 연기가 나빠서라기보다는 원작의 완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이겠죠. 다섯 명의 여성 연기자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해 내고 있습니다. 특히 라우라 보데비히 역의 이노우에 마리나가 좋습니다. 귀엽게 보이려고 애쓰는 연기나 있어 보이는 척하는 연기나 모두 이 캐릭터에게 요구되는 특유의 어색함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히카사 요코, 유카나, 하나자와 카나는 그녀들이 출연한 기존의 다른 작품을 기준으로 이 작품에서 기대할 수 있을 만큼을 딱 해 줍니다(팡 링인 역의 시모다 아사미는 불행히도, 판단이 어려울 정도로 캐릭터의 비중이 낮았습니다).
인피니트 스트라토스는 그렇게까지 못 만든 작품은 아닙니다. 아무리 팬들이 시류에 잘 휩쓸리고, 이제는 거의 공식화된 캐릭터들의 매력 포인트만 쫓아다닌다고 해도, 본 작품의 판매량은 작품의 완성도와 “어느 정도는” 연관이 있습니다. “배트맨과 로빈”이 1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한 것이나, “디 워”가 800만을 동원한 것과 동일시하기는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작품이냐 실패한 작품이냐, 혹은 잘 만든 작품인가 그냥 그런가에 대해 대답하라면 저는 여전히 이 애니메이션에 좋은 점수를 주긴 어려울 듯하네요. 사실 진짜 문제는 “그래, 그 정도 장점이라도 있으면 어느 정도 팔리는 거야 뭐 이유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하고 기준을 자꾸 낮추게 되는 재패니메이션의 현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족
저는 이 작품의 원작을 본 적이 없습니다만, 가만히 보면 원작을 보신 분들의 의견도 저와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재미있는” 연기를 보여 준 연기자는 시노노노 타바네 역의 타무라 유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목소리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같은 역할을 해 보면 괜찮을 것 같네요.
캐릭터들의 이름 표기가 좀 이상합니다. 세실리아 얼콧이야 영국식 발음과 미국식 발음의 차이이고, 팡 링인은 원작부터 “황”이 아닌 “팡”으로 써 놓았으니 그러려니 하지만, Laura Bodewig는 아무리 봐도 “라우라 보디비히”는 아니죠.
글을 쓰면서 엔딩 곡을 주연 성우들(물론 전원 여자)이 라이브로 커버한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팬들의 추임새가 소녀시대의 kissing you에서 소덕들의 함성 정도는 뭐 아무것도 아니더군요. 무서운 양반들입니다.
팬덤에서 샬롯 듀노아의 인기가 제일 높은 거야 이해가 갑니다만, 개인적으로 그 친구는 뭐랄까, 여우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성품이 착하고 다른 여자아이들도 배려할 줄은 아는 것 같은데, 그게 순수한 마음의 발로라기보다는 뭐랄까 계산된 여우짓 같달까요?
관련 링크
공식 홈페이지(http://www.tbs.co.jp/anime/is/index-j.html)
영어 위키피디아(http://en.wikipedia.org/wiki/Infinite_Stratos)
일본어 위키피디아(http://ja.wikipedia.org/wiki/IS_%E3%80%88%E3%82%A4%E3%83%B3%E3%83%95%E3%82%A3%E3%83%8B%E3%83%83%E3%83%88%E3%83%BB%E3%82%B9%E3%83%88%E3%83%A9%E3%83%88%E3%82%B9%E3%80%89)
인피니트 스트라토스 위키(http://infinite-stratos.wik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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