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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투수와 관련된 논쟁에서 빠지는 법이 없는 주제가 바로 투수혹사의 문제이다. 장명부나 최동원 같은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무지막지한 투구수는 그렇다 치더라도,
역대 단일시즌 최다투구수 4위와 9위가 2000년 이후에 나왔다는 것(2001년의 에르난데스와 이승호), 그리고 류현진이 데뷔 이래 혹사논쟁의 중심에 서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이는 중요하게 생각할 주제다.
문제를 선발투수에만 국한시켜 보면 흔히들 말하는 "투구수 100개"가 이 떡밥의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조악하게 나누자면 고시엔[甲子園] 류의 투구로 상징되는 일본의 혹사야구(?)는 투수의 팔은 많이 던지면 던질수록 강해지므로, 어릴 때부터 투구수를 지나치게 관리하면 25세 이후 "한창 던질 때"에도 투수가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메이저리그에서는 고졸 선발투수는 물론 대졸 선발투수도 데뷔 시즌에는 정규 경기에서 투구수가 90개를 넘기지 않도록 관리하는 편이다. "투수의 어깨는 예전 흑백TV의 채널을 돌리는 스위치와 같아서 처음부터 그 사용횟수가 정해져 있다." ; 이른바 "TV 채널 스위치" 론이다.
메이저리그에서 혹사와 관련된 가장 최근의 임팩트 있는 이야기는 2003년의 Kerry Wood와 Mark Prior일 것이다. 당시 한 칼럼니스트가 Dusty Baker 감독과 선발투수들의 투구수 문제를 논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글을 시작했다. "그들의 투구수는 마치 무더운 여름 애리조나의 화씨온도와 비슷하다. 111, 115, 116..." 이 칼럼에서 Baker는 "혹사가 아니냐"는 물음에 다음과 같이 당당하게(?) 답했다.
"나 역시 그 점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지만 그들은 아직 젊다. 현재 상황은 모든 선수들이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 젖먹던 힘까지 짜내야 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승리를 위해서는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기 마련인데, 선수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주면 승리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현재는 승리가 최우선 과제이며 선수들은 그것을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경기에 투자해야 한다. 몇몇 선수들은 아직 긴 시즌을 풀로 뛰거나 많은 이닝을 던졌던 경험이 없다. 그러나 경험을 해본다면 그들도 자신들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http://www.maxmlb.co.kr/zboard/bbs/view.php?id=column&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63)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2001년 여름, 전체 드래프트에서 두 번째로 뽑혔던 Mark Prior(첫 번째는 Minnesota의 포수 Joe Mauer)는 자신의 첫 풀타임 시즌에 30번 선발로 나와 3,399개의 공을 뿌렸다. 그러니까 한 번 나올 때마다 약 113개의 공을 던진 셈이다. 그 해 Prior의 성적은 훌륭했다(211 1/3IP 18W 6L ERA 2.43 Whip 1.10). 그러나 Prior는 그 때부터 뻔질나게 DL을 오가다가 2006년 중반 이후부터는 아예 빅 리그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2002년과 2003년에 각각 3,389개와 3,528개의 공을 던진 Wood는 공교롭게도 Prior와 똑같이 2004년부터 부상 대열에 합류, 왔다갔다를 반복하다가 올 시즌부터 마무리투수로 보직을 변경했다. 그러나 34번의 세이브를 기록하는 동안 6번 팀 승리를 날린 방어율 3.26(Whip 1.09)의 Closer를 좋게 봐 주기란 어렵다.
Wood와 Prior의 "드라마틱했던" 2003년을 숫자로 설명할 수는 없을까? 비록 투구수라는 한 가지 지표에 국한된 방법이기는 하지만, 선발투수 혹사의 계량화에는
투수혹사정도(Pitcher Abuse Points)라는 것이 다소나마 도움이 된다. 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선발투수가 100개 이하로 던지고 내려간 게임은 그냥 넘어간다. 101~110개의 공을 던진 게임은 공 하나를 던질 때마다 1점씩 추가한다. 111~120개를 던진 게임은 2점씩 더한다. 이런 식으로 150개까지 더하다가 151개부터는 무조건 6점을 더한다.
그래서 PAP의 point는 RC처럼 숫자 그 자체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서로 약간씩 다른 IP와 투구개수를 기록한 선발투수들이 over-pace해서 던졌다고 할 수 있는 경기는 얼마나 되는가를 숫자의 대소(大小)로 비교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데이터에는 대조군이 있어야 한다. 아쉬운 대로 Nomo Hideo의 PAP도 같이 보도록 하자. Wood와 Prior는 2003년 시즌 각각 211이닝과 211 1/3이닝을 던졌다. Nomo는 2003년에 218 1/3이닝을 던졌다. 두 영건보다 오히려 조금 더 많은 이닝을 던진 셈이다. 세 투수의 투구수와 그에 따른 혹사도를 계산한 결과는 아래와 같다.
GS : 선발등판 게임, PC with GS : 선발등판했을 때 투구수, PC / GS : 선발등판한 게임당 투구수
PAP : 혹사정도, PAP / GS : 선발등판한 게임당 혹사정도
Wood와 Prior는 Nomo보다 조금 더 적은 이닝을 던졌고 선발등판도 조금 덜 했지만, 투구수는 Nomo보다 많다. 자연히 선발등판했을 때 한 경기당 투구수는 훨씬 많아진다. 더 안 좋은 것은 Baker가 110개, 120개는 물론 130개를 넘기도록 선발투수를 교체하지 않던 경우가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 32번과 30번의 선발등판 중 Wood와 Prior가 120개 넘는 공을 던진 횟수는 무려 14회 / 19회에 달한다.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Baker가 투구수 100개 이전에 마운드에서 두 투수를 내린 것은 각각 1회 / 2회에 지나지 않는다. Wood는 노동절인 5월 10일, "기록적인" 141개의 투구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 결과로 두 투수가 얻은 것은 (단순히 수치이긴 하지만) Nomo의 3.5배에 달하는 선발투수 혹사도, 그리고 이후 다년간의 부상이다.
어떻게 보면 여기까지는 머나먼 땅에서 5년 전에 잘 던지고 그 다음부터 말아먹고 있는 두 투수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바로 우리 곁에서 공을 던지고 있는 선수들은 어떨까?
2008년 투구이닝 BEST 10.
2006년과 2007년의 리오스를 보다가 2008년의 봉중근을 보면 임팩트가 다소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봉중근은 올해 무리했다. 물론 PC / GS에서 나타난 기록, 즉 로테이션을 지키면서 매 경기마다 105개의 공을 던지는 것은 그 나이대의 투수에게 그다지 무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봉중근은 상당히 자주 110+개를 던졌고, 다른 투수들보다는 자주 120+개를 던졌다. 매 경기마다 104개에 가까운 공을 던진 옥스프링의 PAP는 봉중근의 2/3 수준이다.
류현진은 PAP / GS 1위의 영예(?)를 차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류현진은 데뷔 이래 이 부문에서 꾸준히 BEST 3 이내를 차지하고 있다. 103개의 평균 투구수는 고졸 3년차 투수에게 확실히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소이다. 김인식 감독은 류현진이 등판한 26경기 중 10경기에서만 투구수 100개 미만일 때 강판시켰다. 120개 이상의 공을 던진 경험도 4번이다. Kerry Wood의 141구 경기보다는 임팩트가 약하지만, 9월 5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는 8이닝 동안 134개의 공을 던지며 승리를 따내기도 했다.
봉중근은 마이너리그를 경험했고 마인드가 좋은 투수다. 류현진은 투구폼이 부드러우며 부상당할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봉중근은 올해 처음으로 한국에서 규정이닝을 넘겼으며 선발투수로 풀 시즌을 뛰었다. 류현진은 이제 만 21세에 불과하다. 그는 지난 3년 동안 두 번의 포스트시즌(한 번의 긴 시리즈와 한 번의 짧은 시리즈), 세 번의 국가대표(도하, 올림픽예선, 베이징)를 경험했고, 몸이 완성되기 이전에 큰 수술을 한 번 치뤘으며, 2006년에도 2007년에도 3,000개가 넘는 공을 던졌다. 지난 두 시즌 동안 류현진보다 많은 공을 던진 선수는 두 명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두 선수는 같은 팀에 소속된 외국인 투수였다.
진흥고 동기생 가운데 한 명은 자기들 때문에 무리했다고 하던데.음. (침묵하다) 올해 주전선수로 2학년생들이 많이 뛰었다. 상대적으로 3학년 동기생들의 출전 기회가 적었다. 내가 좀 더 노력하고 인내하면 동기생들이 좋은 대학을 갈 수 있고 프로에도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아쉬운 건 내가 더 분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금도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 SPORTS 2.0 No.22 (2006.10.30) 정영일 인터뷰 中
지난 2006년, 광주진흥고의
정영일은 야구를 잘 볼 줄 모르시는 우리 어머니마저 넋놓고 보시며 "쟤 너무 많이 던지는 거 아니니?"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공에 혼(魂)을 섞어 가며 던지고 또 던졌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이후 국가인권위원회인가 하는 정부기관에서 청소년 야구선수들이 너무 많은 공을 던지는 것은 학대(abuse)에 해당된다는 내용의 시정권고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했던 것 같기도 하다"는 말을 굳이 쓰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Dusty Baker의 "완투경험을 쌓게 하고 자신감을 얻게 한다"는 혹사성 선발투수 기용의 주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한국 학원야구와 프로야구에는 여기에 더 중요한 하나의 이유가 더해진다.
"동원아, 우짜노, 여기까지 왔는데." 물론 야구는 팀 스포츠이며, 팀의 승리가 가장 중요한 목표이고, 팀 전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투수는 최선을 다해 던질 의무가 있다. 그 투수가 에이스(Ace)라면 더욱 더 그렇다. 전준호는 "희생플라이, 희생번트라는 기록이 존재하는 스포츠는 야구뿐이다."라고 말했다. 분명 팀을 위한 희생은 거룩하고 감동적이다. 그러나 누차 말했듯이,
현재의 1승이 미래의 10승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류현진은
41세까지 150+이닝을 꾸준히 이어가야 할 선수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제2, 제3의 송진우가 필요하다.
※ 이 글의 MLB 통계는 ESPN(
http://espn.com), 한국프로야구 통계는 ISTAT(
http://istat.co.kr)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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