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숫자가 없는 짧은 야구 이야기입니다. 아실 만한 분들은 다 아시는 스토리이긴 합니다.
오늘 홍성흔이 두산에서 롯데로 이적했습니다.
저는 두 구단에 호감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사실 딱히 싫어하는 구단이 없습니다. 해태는 이미 사라졌고), 제가 응원하는 팀 선수가 아니고 제가 응원하는 팀과도 관계가 없기에 관망하는 입장입니다. 그냥 생각나는 말이 있다면, 야구 모르는 것처럼 인생도 모른다. 그 정도.
OB는 과거 포수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썩 괜찮다고 평가받는 포수들을 많이 가진 팀이었습니다. 1995년 우승 직후에는 조금 주춤했지만, 홍성흔이 두산의 1차지명을 받던 당시에는 이후 다른 팀의 주전이 되는 포수를 두 명이나 데리고 있었습니다. 1996년의 1차 지명자인 최기문(롯데)와 1997년의 2차 1번인 진갑용(삼성)이 그들이죠. 특히 당시 고려대 4학년이었던 진갑용을 두고 4강이 멀어진 LG와 OB가 서로 2차지명 첫 번째 순서를 차지하기 위해 "꼴찌 경쟁"을 했던 것은 유명합니다. 당시 평가가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포수였으니까요.
그러나 진갑용은 프로 입단 첫 두 해 동안 공-수 양면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당시 컨트롤이 좋지 않았던 박명환의 "패대기볼"을 많이 놓치면서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투수 공 못 받는 포수"라는 비아냥까지 들었죠(지금처럼 구체적인 기록이 있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을 텐데, 아쉽군요). 공격에서 암울하기로는 최기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OB에는 이 두 선수 말고도 고참급이었던 김태형과 프로 4년차였던 이도형(그 이도형입니다)이 있었지만, 뚜렷한 주전은 없었습니다. 하다못해 공격이라도 특출나게 하는 선수라도 있었으면 주전으로 밀었을 텐데요. 이 무렵의 OB 포수는 진갑용과 최기문이 6 : 4 정도의 비율로 마스크를 나누어 쓰고 김태형이 백업을 들어가는 체제였습니다.
이 때 홍성흔이 데뷔합니다. 사실 홍성흔의 타격성적은 지금 보면 썩 좋은 수치는 아닙니다. 111경기에 나와서 392번의 타격기회를 가졌고, 16홈런 63타점에 .258 / .304 / 439의 라인을 보였으니까요. 1999년은 한국야구에서 기록적인 타고투저 시즌으로, 딱 3할을 기록한 홍현우의 타율 순위가 20위였습니다. 홍성흔이 주전으로 낙점된 것은 신인으로서 썩 괜찮았던 수비력과 그의 가장 큰 장점인 파이팅, 그리고 진갑용의 기대 이하의 활약에 따른 반작용이었다고 해야겠습니다. 사실 요즘 포수로 나와서 데뷔 시즌에 OPS .743을 찍는 선수도 없긴 하지만요. 강민호가 그래서 대단한 것입니다.
홍성흔은 결국 이 해 최고 신인상을 수상합니다. 자연히 주전은 홍성흔으로 낙점되었고, 진갑용은 1999년 시즌 중 포수난에 시달리던 삼성으로 트레이드됩니다(최기문은 이보다 한 해 앞서 롯데로 이적합니다). 당시 삼성은 그 유명한 김영진이 포수마스크를 쓰고 있었습니다. 통산 .155 / .220 / .216을 마크하신 이 분은 1997년 쌍방울과의 경기에서 "관중석에 공 던져준 사건"으로 아직까지 널리 알려져 있죠. 그만큼 이만수라는 대형 포수의 후계자 자리는 휑했습니다. 삼성은 포수를 구하느라 동분서주했고, 진갑용을 데려오는 것으로는 모자랐던지 1999년 시즌 종료 후 당시 박경완과 함께 리그 최고의 포수였던 LG의 김동수를 FA로 영입합니다.
이로써 2000년부터 최고 수준의 포수와, 체면은 구겼지만 그래도 top prospect였던 진갑용의 주전포수 경쟁 2라운드가 삼성에서 시작됐습니다. 2000년의 기록을 보면 두 선수가 기록한 타석 수는 거의 동일합니다. 포수 마스크도 반반 나눠서 썼습니다. 타격 성적은 엇비슷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조범현 배터리코치(현 KIA 감독)는 진갑용의 손을 들어 주고, 김동수는 2년의 계약기간 동안 진갑용에 내내 밀리다가 2001년 시즌 종료 후 2 : 6 트레이드로 SK에 넘어갑니다.
그 동안 홍성흔은 두산에서 주전포수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습니다. 2001년에는 진갑용보다 먼저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보기도 했고, 그룹 고위층에서도 좋은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돈을 쓸 때 정확히 따지고 쓰는 두산 프런트도 홍성흔에게는 실제 그가 이룬 것보다 더 많이 베풀었다고들 합니다. 두산그룹 전체의 사보에 커버스토리로 뜨기도 했고, 그룹의 행사에 두산베어스 대표로 참석하기도 하는 등, 말 그대로 두산의 얼굴이 되었던 셈입니다. 물론 두산의 실제 공격을 책임졌던 건 우즈, 김동주, 심정수와 그 앞을 챙겼던 정수근, 그 뒤를 받쳤던 안경현이었지만, 홍성흔은 그 와중에서도 자신의 캐릭터를 명확히 살린 덕을 톡톡히 봤던 셈입니다.
시간은 흘러 2002년 삼성은 한국시리즈에서 첫 우승을 차지합니다. 진갑용은 이 해에 전 경기를 출장하여 최초로 규정타석을 넘기면서 18개의 홈런을 쳐내고 .281 / .347 / .465를 찍습니다. "예외"로 취급받는 박경완을 제외하면 포수로서 최대의 기대치를 달성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반면 김동수는 2002년 시즌을 SK에서 그럭저럭 보내지만, 시즌 종료 후 삼성에서의 악연이 있었던 조범현 씨와 감독으로 재회하면서 결국 방출되는 아픔을 겪습니다. 이 때 김동수의 나이는 만 35세. 1,000게임을 넘게 뛰면 그 수명이 다한다는 포지션에서 1,364게임을 치렀던 그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커리어는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박경완을 FA로 떠나보낸 현대 유니콘스에서 김동수를 영입했고, 이듬해 김동수는 기적에 가까운 성적을 보여 줍니다. 117경기 367타수 113안타 16홈런 68타점 .308 / .390 / .485. 최고 신인상을 수상했던 1990년의 기록마저 뛰어넘는 기록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꾸준히 OPS .700 언저리를 맴돌고 있지만, 그는 2007년까지 현대의 주전 포수였습니다. 올해는 부상으로 인해 많이 뛰지 못했고 팀의 재정상태가 최악으로 치닫으면서 앞날이 불투명하긴 하지만, 누구도 김동수를 성공한 포수 중 한 명으로 꼽는 데에는 주저하지 않습니다.
한편 홍성흔과 진갑용은 비슷한 굴곡을 겪습니다. 2004년에는 본의 아니게 지명타자로 자주 출전하면서 좋은 타격성적을 기록하기도 하고, 이후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주전포수로 활동합니다. 2006년 WBC가 처음 열렸을 때 두 선수는 모두 대표팀에 발탁됩니다. 그리고 물론(!) 홍성흔이 스타팅 라인업에 먼저 들어갔다가 경기 후반에 진갑용 / 조인성으로 교체됩니다. 그 때만 해도 홍성흔이 곧 소속팀과 사이가 틀어질 것이며, 포수 마스크를 쓰기 어려울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거의 없었다고 해야겠네요. 연배가 약간 위인 박경완을 제외하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선호는 홍성흔 - 진갑용 - 조인성 순이었습니다.
2006년 시즌 종료 후 진갑용은 3년 26억 원에 원소속팀인 삼성과 FA 계약을 맺습니다. 박진만 급의 초대형 계약은 아니었지만, 선수생활 동안 한 번 찾아오는 기회를 잘 잡은 셈입니다. 조인성은 여기에 한 술 더 떠 2007년 시즌 종료 후 포수로서는 최초로 총액 30억원 대의 몸값을 받게 됩니다. 조인성을 딱히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당시 군대에서 뉴스로 이 소식을 듣고 살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2007년 시즌 초반의 부상 이후 홍성흔의 이야기는 다들 아시는 대로입니다. 김경문 감독의 "지명타자化" 공언, 채상병의 대두, 시즌 종료 후 트레이드 요청, 전지훈련 제외, 그리고 한 수 접고 지명타자 홍성흔으로 돌아와 보여 준 2008년의 성적. 홍성흔의 2008년 성적은 그의 career high였던 2004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포수 마스크를 벗고 타격에만 전념한 홍성흔이 어느 정도까지 잘 해 줄 수 있는지를 보여 줬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렇기에, 홍성흔이 다시 그 성적을 보여 줄 확률이 그리 높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의 프로 인생을 보상받을 기회(!)인 FA 찬스에서 그는 원소속팀과의 계약에 실패하고(라기보다는 서로 입을 닫고), 4년 기준 20~25억원 정도로 추산되는 금액에 롯데로 떠났습니다. 정확히 4년 전 김재현이 사인했던 4년 18억원보다는 높은 금액이지만, 자신과 동급 혹은 아래로 여기던 진갑용과 조인성이 맺은 계약에 비하면 선수 개인으로서는 많이 아쉬울 것입니다.
비단 돈이 아니더라도 아쉬움은 있습니다. 포수, 유격수 등 수비 부담이 큰 포지션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은 자신의 포지션에 대한 애착이 있습니다. 유지현이 그랬고, 이종범이 그랬고, 우승을 위해서 포지션을 바꾸기는 했지만 Alex Rodriguez의 마음속에도 아직은 그런 아쉬움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구단과는 사이가 틀어졌고, 야구를 일 삼아 하는 것이 프로선수지만, 그를 응원하던 팬들이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겠지요.
홍성흔은 아마 포수로 뛰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포수 자리에는 좋은 타격능력을 가진 강민호라는 젊은 군필 선수가 있고, 그 백업으로는 자신이 입단하기 전에 먼저 팀을 떠났던 최기문이 있습니다. 자이언츠에서 기대하는 것은 아마도 지명타자로서의 능력 + 유사시 일정 수준의 경기를 책임질 수 있는 포수로서의 능력 정도일 것입니다. 정수근에게 6년 40억을 퍼 주던 시절에 비하면 나름대로의 발전이 있는 셈입니다.
홍성흔, 진갑용, 그리고 김동수. 인생은 모르는 것입니다. 공 잘 놓치던 물방망이 진갑용이 블로킹에 능숙한 베테랑 히터 진갑용이 되었고, 포수로서 선수생명이 끝났다는 판단 하에 방출되었던 김동수는 다른 팀에서 멋지게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홍성흔의 인생도 모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현재가치를 높게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예측은 어차피 틀리라고 하는 것이니까, 홍성흔이 제 예측을 빗나가게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야구를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인생도 모릅니다. 내 인생은 또 어찌 될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