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강의 팀 : ① 2000년 현대 유니콘스


한국프로야구사상 가장 완벽했던 팀, 2000년 현대 유니콘스.



26년이라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한국야구에서 명멸했던 203개의 프로 팀 가운데 가장 강했던 팀을 꼽으라면 어떤 팀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여러 가지 답을 할 수 있겠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그 안에 2000년 현대 유니콘스가 분명히 꼽히리라는 것이다. 실로 2000년 현대는 가장 완벽한 팀이었다. 물론 그들은 창단 이래 항상 좋은 성적을 유지해 왔다. 그리고 1998년에도, 2003년에도, 2004년에도 정규시즌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그들이 2000년처럼 정규시즌에서 많이 이겨 본 적은 없었다.


2000년 현대는 40패 2무승부를 기록하는 동안 91승을 거두면서 한국프로야구사상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팀이 되었다. 그들은 또한 가장 많은 득점을 올린 팀이었고(777점, 이후 2002년 삼성라이온즈가 동률을 이룸), 리그 평균보다 정확히 1점 낮은 팀 방어율을 달성했다. 그 결과 그들은 1982년 OB와 1985년 삼성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정규시즌 승률(.695)을 기록했고 피타고리안 승률 또한 .679에 달했다. .848의 팀 OPS는 단순계산으로도 리그 평균보다 10%나 높은 수치인데 이는 그 해 장종훈의 개인 OPS와 동일하다.



2000년 막강 현대의 중심에 서 있던 선수는 "18승 트리오"로 불렸던 정민태, 김수경, 임선동이었다. 1999년 사상 최악의 타고투저 속에서 150이닝 이상 던진 투수 가운데 홀로 2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며 230 2/3이닝을 던지고 20승을 거둔 정민태는 이듬해에도 207이닝을 던지면서 3.48의 방어율을 기록했고, 리그의 평균적인 투수에 비해 26.7점을 덜 내줬다. 3.48이라는 방어율은 요즘 기준으로 보면 그다지 와 닿지 않지만, 리그 평균 방어율을 4점으로 놓고 보면 정확히 3.00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1998년 고졸 신인으로 화려하게 데뷔하여 한국시리즈 우승과 최우수신인상이라는 영예를 동시에 안은 "수경이 언니" 김수경도 195이닝을 책임지면서 172개의 삼진을 잡아냈고, 3.22의 조정방어율(4.00 기준)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 해 가장 위력적이었던 선발투수는 임선동이었다. 프로에 입문할 때부터 아마추어 - 프로 - 일본의 3중계약이라는 파문을 낳으며 야구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풍운아" 임선동은 2000년 전까지 프로 데뷔해였던 1997년에 135이닝 조금 넘게 던지면서 11승 7패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을 뿐, 그 후 2년 동안에는 14번의 선발등판에서 1승 7패를 떠안으며 7.21이라는 수준급 방어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김시진 투수코치의 조련을 받은 2000년의 임선동은 각성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다. 팀 내에서 가장 많은 탈삼진, 선발 트리오 중 가장 낮은 방어율과 볼넷허용을 기록하며 그 전 3년 동안 소화한 이닝을 모두 합친 것과 비슷한 이닝을 책임졌던 것이다. 결국 임선동은 정민태, 김수경, 구대성을 제치고 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한다.


2000년 현대를 이야기할 때 흔히 빠지는 부분이 화려한 선발투수들만큼이나 탄탄했던 구원투수진이다. 확실히 선발투수 세 명이 54승을 합작하고, 모두 190이닝 이상을 소화했기에 구원투수들이 평범해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100이닝 가까이 던지면서 투구이닝보다 많은 수의 삼진을 잡아내고, 그 해 신설된 홀드 부문 1위를 차지한 "믿을맨" 조웅천이 없었더라면 2000년 현대가 피타고리안 승률보다 높은 실제 승률을 기록하기란 대단히 어려웠을 것이다. 바로 전 해 쌍방울이 지명하고, 현장에서 5억 원에 현대로 넘겨 준 특급좌완 마일영도 조웅천과 거의 비슷한 이닝을 소화하면서 수준급의 필승계투조 역할을 해 냈다. 그 해 두 번째로 많은 39세이브를 기록한 위재영이 맡았던 마무리가 탄탄했음은 물론이다.



2000년 현대가 가장 완벽하고 위력적인 팀이었다면, 2000년 현대의 "4박"은 가장 완벽한 센터라인의 포지션 플레이어들이었다. 개인통산 최다기록이자 최초로 포수 40홈런을 기록한 박경완은 화려한 공격과 건실한 수비라는 창과 방패로 팀을 정규시즌 -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려놓았고, 이만수에 이어 두 번째로 포수로서 MVP를 차지한다. 1996년 데뷔와 동시에 30홈런 - 30도루를 성공시키며 괴물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박재홍은 이 해에도 30 - 30을 성공시키며 106점에 달하는 RC를 기록하는 등 커리어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이후 부상과 부진, 트레이드로 기존 자신의 성적에서 한 단계 낮은 아웃풋을 보여 주던 박재홍은 2008년에 다시 최고의 한 해를 기록하게 된다.)


2루수를 맡았던 박종호는 1994년 LG의 김재현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강했던 2번타자였다. 특기인 작전수행능력과 진루타 생산능력이 빛을 발했음은 물론이거니와, 이 해 그는 김동주를 1리 차이로 제치고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타율 1위를 기록했다. 사실 2000년의 현대는 박종호의 "점수를 만들어내는 희생"이 없어도 아무 상관이 없었던 팀이었다. 공격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종호는 자신의 순수한 공격력만으로 타율 1위, 출루율 2위, OPS 13위, RC 11위를 기록하며 1980년대의 김성래, 1990년대의 박정태에 이어 가장 화려한 2루수로서의 시즌을 보냈다.


예나 지금이나 수비 하나로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박진만은 1996년 건실한 타격성적을 보여 준 이후 2년간 멘도자 라인에서 헤매다가, 1999년부터 다시 타격에 눈을 뜨기 시작하여 2000년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굉장히 어려운 수비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쉽게 해내고선 생글생글 웃기만 하던 이 만 24세의 유격수는 이 해 처음으로 자신보다 공격력에서 두세 수쯤 앞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던 LG의 유지현을 제치고 브리또(SK)에 이어 두 번째로 훌륭한 득점기여능력을 보여 줬던 것이다. 물론 박진만은 2001년에 3할대 타율과 20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정점에 올려놓게 된다. 그러나 박진만의 진가가 제대로 발휘되기 시작한 시점을 찾으라면 역시 2000년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해 박진만이 기록한 .835의 OPS가 팀 전체 OPS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만큼 2000년 현대는 라인업에서 도무지 구멍을 찾아보기 어려운 평균 이상의, 훌륭한, 혹은 아주 훌륭한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었고, 속된 말로 쉬어 갈 틈을 보기 어려웠던 타선이었다. 황당할 정도로 많은 삼진을 당하면서 역대 최강의 공갈포라는 오명 아닌 오명을 뒤집어 쓴 3루수 외국인 퀸란은 팀 내에서 박경완 다음으로 많은 홈런(37개)을 기록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예상치 못한 홈런"을 때리는 데 귀재였고, 전준호, 이숭용, 심재학은 모두 자신의 위치에서 주어진 역할을 다하며 뛰어난 공격력을 발휘했다. 베어스의 탄탄한 2루수였지만 유니콘스에서 선수생활의 황혼기를 맞이했던 이명수는 2000년에 얼토당토않을 만큼 좋은 성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모든 것이 잘 돌아갔던 라인업"인 셈이다. 


2000년 현대의 완벽함은 수비에서도 드러난다. "4박"은 수비 스펙트럼에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부분을 책임지는 야수로 뛰면서 가장 강한 센터라인을 만들어냈고, 코너 인필더였던 이숭용과 퀸란 역시 자신의 포지션에서 독보적인 수비를 뽐냈다. 전준호의 노련함과 심재학의 강견이 센터필더의 박재홍을 뒷받침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수비에서조차 구멍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김재박 감독은 1996년 유니콘스의 창단과 동시에 감독을 맡으며, 2007년 트윈스로 돌아가기까지 11시즌 동안 현대를 지휘했다. 당시 기준으로 파격적인 나이에 감독에 임명되어 11번의 시즌에서 총 4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록한 그는 이 해 (당연히)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많은 승리와 가장 높은 승률을 기록했다. 모든 것이 완벽에 가까운 팀이었기에, 어찌 보면 김재박 감독의 역량이 없었더라도 2000년 현대가 무난히 1위를 차지했을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아무리 막강한 올스타 레벨의 선수들로 라인업이 구성되어 있어도, 감독이 나쁜 쪽으로 팀에 손을 대기 시작하고 라인업을 뒤흔들면 그 팀은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 평균 이하의 선수들을 가지고 최대의 역량을 발휘하게끔 만드는 감독은 확실히 김재박보다는 김성근 쪽이다. 하지만 2000년의 김재박은 적어도 가장 좋은 선수들을 가지고 한 시즌을 보내면서 시즌 내내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고, 경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작전구사는 하지 않았던 훌륭한 감독이었다. 혹자들은 김재박 감독이 지나치게 많은 희생번트를 주문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2000년 현대는 LG, 롯데, SK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74개의 팀 희생번트를 기록했다. 이는 2003년의 139개, 2004년의 111개, 2006년의 153개보다는 훨씬 적은 수치이다. 가만히 놔 둬도 "이기는 야구"를 하는 타선이 있다면 희생번트를 굳이 지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2000년 현대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팀이었다. 물론 부분을 놓고 본다면 2000년 현대보다 더 강한 전력을 갖춘 팀들도 있었다. 1991년 해태는 2000년 현대보다 강한 투수력을 지녔으며, 1993년의 삼성은 비록 정규시즌 2위에 그쳤지만 2000년 현대 못지않은 타선을 보유했다. 그러나 2000년 현대는 종합적인 차원에서 약점을 가장 찾아보기 힘들었던 팀이었으며,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도무지 질 것 같지 않던 팀이었다. 그들은 완벽이라는 단어에 가장 가까운 플레이를 했고 최강이라는 단어에 가장 가까운 성적을 냈다. 야구에서 "밸런스"를 중시한다면, 그들은 밸런스의 황제였다. 지금은 사라졌기에 어쩌면 그 완벽함이 더욱 빛나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Next up : 1994년 LG 트윈스




모든 기록은 ISTAT(http://www.istat.co.kr)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by Lucid | 2008/12/12 15:11 | Baseball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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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이터리얼 at 2008/12/12 17:36
재밌는 포스팅이네요.ㅎ
엄청난 타고투저 속에서 18승 트리오를 배출한 00현대는 의심할 여지없이 무적의 팀이었죠. 박재홍이나 박경완이야 말할것도 없고 팀내 최저타율인 퀸란의 타점만 봐도 무섭네요. 9명의 타선중에 필요없는 선수가 한명도 없어 보일정도로....
근데 저는 LG 팬이라서 그런지 다음 포스팅이 더 기대되네요.ㅎㅎ
Commented by 파도지기 at 2008/12/12 18:37
퀸란이 있던 2000년 현대...
박경완, 박진만, 박재흥. 전준호, 정민태, 김수경...
다시 보고싶은 라인업이군요.
Commented by 체리러브 at 2008/12/12 19:51
어휴 이때 진짜 말이 필요없었죠. 타격, 투수진 전체적으로 완벽했으니까요.
Commented by 류노스케 at 2008/12/12 22:13
정말 2000년 현대는 멋졌었지요...
LG팬이었기 때문에 더 배아팠어요 흑흑~~

94년 LG편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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