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가장 유명했던 투수리드. ⓒ 까를로스박
짧은 구상 정도의 글.
포수의 리드공헌도를 포수별 방어율과 같은 값으로 평가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왜냐하면 이런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1) 한 시즌을 표본으로 삼는다 해도 표본의 숫자가 충분하지는 않다.
2) 대부분의 팀에서 포수자리는 주전 1명이 거의 출전한다. 즉, 2명 이상의 포수를 같이 측정할 만한 표본이 부족함.
3) 가장 중요한 것인데, 두 포수가 같은 투수를 데리고 경기를 했다고 해도 당일 투수의 컨디션이라는 요인이 더 중요.
4) 방어율이나 경기당 실점(RA) 등은 투수와 포수를 제외한 야수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1번과 2번은 기록을 활용하여 포수의 리드공헌도를 측정할 때 부딪히는 가장 기초적인 문제이며, 3번이 의외로 중요한 의미를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투수의 컨디션이라는 요인이 더 중요한 것처럼 기록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포수의 리드가 투수의 방어율을 낮추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포수의 리드가 개별 투수의 컨디션 변화나 구장, 상대팀의 그날 라인업이나 전력 등 다른 요소에 비해 눈에 띌 만큼 경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그만큼 눈에 띄는 기록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굴뚝을 때면 연기가 나야 한다. 그런데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2006년 이전의 상황별 기록이 전무하다시피 한 한국야구는 물론이거니와 MLB에서도 이 문제는 충분히 해소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American Stathead들도 이 문제는 우물쭈물하면서 넘어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네들이 내놓은 결론의 경향을 살펴보면,
1) (앞에서도 했던 말이지만) 기본적으로 표본이 충분하지 않다.
2) 포수의 리드공헌도를 측정하기에 방어율이나 기타 전통적인 지표들이 적합한가도 사실 의심스럽다. (어쩌라고. -_-;)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분석을 하자면, 단일 시즌을 기준으로 삼으면 포수에 따라 투수들의 방어율이 조금씩 달라지는 경향이 존재한다. 그러나 웃긴 것은 올해 투수들의 방어율을 많이 낮춰 준(?) 포수가 내년에 방화를 유도하는 포수로 전락하고, 올해 불을 지른 포수가 그 다음 해에는 갑자기 엄청난 리드의 명수가 되는 등
널뛰는 경향(fluctuation)이 적지 않다.
4) 이상을 종합해 보면, 영리하고 공부를 많이 하는 포수가 판판이 놀기만 하는 포수보다 게임을 잘 이끌어 갈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는 모르겠으나 그러한 능력이 게임에서 구체적인 기록이나 통계로 구현되는 것 같지는 않다. 즉, 그런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설혹 있다고 해도 게임에서 써먹을 만한지는 모르겠다.
별 도움 안 되는 예로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은퇴한 이만수를 가볍게 제낀다고 많은 사람들이 (함부로) 여기는 박경완과 그의 백업포수들을 들 수 있다. 2006년에서 2008년까지 박경완과 제1백업포수의 성적 비교. 최근 3년의 기록을 구한 것은 기록을 구할 수 있는 범위가 딱 거기까지이기 때문.
2006년 박경완 804 1/3이닝 포수출전시 투수 평균자책 3.67
2006년 최경철 243 1/3이닝 포수출전시 투수 평균자책 4.73
흠 역시 명불허전의 박경완이야.2007년 박경완 927 1/3이닝 포수출전시 투수 평균자책 3.26
2007년 정상호 207 0/3이닝 포수출전시 투수 평균자책 3.22
별 차이가 없긴 한데... 2008년 박경완 775이닝 포수출전시 투수 평균자책 3.43
2008년 정상호 359이닝 포수출전시 투수 평균자책 2.78
어라?물론 박경완의 리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박경완이 정상호에 비해 유독 불리한 환경에서 포수 마스크를 쓰고 경기를 뛰었기 때문에(바꿔 말하면 정상호가 "쉬운 경기"에 주로 출전했기 때문에) 박경완이 포수 마스크를 썼을 때 평균자책이 더 높았다고 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정상호가 김광현이나 채병룡, 정우람 같은 성적이 좋은 투수들과만 손발을 맞췄을 경우라든가. 게임로그까지 뒤져 볼 열의는 없긴 하다. -_-; 다만 정상호가 2년 동안 그랬을런지는 모르겠지만. 더 설득력있는 반론으로는 정상호의 이닝숫자가 박경완에 비해 확실히 적어서 표본이 충분치 않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정상호도 주전으로 부담 팍팍 줘 가면서 900이닝 동안 출전시키면 평균자책 3.50 넘게 찍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1) 어떤 포수가 다른 포수보다 리드가 뛰어나서 그것 자체로 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내려면
"기록으로는 보이지 않는 공헌도" 같은 것을 따질 필요도 없이, 그 뛰어남이 기록에 고스란히 나타나야 한다. 바꿔 말하면 리드가 좋은 포수가 마스크를 썼을 때 투수들의 평균자책점이나 이닝당 출루허용이 리드가 나쁜 포수가 마스크를 썼을 때에 비해
어느 상황에서건 좋은 쪽으로 나타나야 한다. 상황에 따라 폭은 다르겠지만.
2) 그런데 현실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3) 따라서 고영민을 상대로 한 조인성의 바깥쪽 리드와 같은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라면 포수 리드의 힘은 생각보다 크지 않은 것 같다. 대충 생각하기로는, 점수로 환산하면 후하게 쳐서 15경기당 1점 정도 되지 않을까? 물론 근거는 없다.
기록이라는 요소를 배제해도 두 가지 이야기를 더 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1) 상식적인 이야기이고 누구나 수긍하는 점인데, 유독 포수리드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면 아무도 말하지 않는 주제.
포수가 리드하는 대로 매번 정확히 공을 던질 수 있는 투수가 도대체 존재하기는 하는가? 모든 투수가 전성기의 Maddux나 이상목 정도의 제구력을 갖추지 못하는 이상 그럴 것 같지 않다. 그러니까, 아무리 포수가 리드를 잘 해도 투수가 실투를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2) Leonard Koppett가 그의 명저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했던 이야기의 바리에이션. Lou Boudreau가 Ted Williams Shift를 처음 고안했을 때 그는 당장 수비의 천재로 일컬어졌다. 그 시대에만 해도 수비 시프트란 Boudreau나 Ozzie Smith, 요즘으로 치면 Omar Vizquel 레벨의 명 수비수들이나 머릿속에 그려볼 만한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데이터 야구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그 정도 수준이 되는 선수라야 예측수비를 할 수 있었고, 시프트도 만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수비 시프트의 개념도 널리 퍼져 있고, 평균 정도 되는 야수들이라도 자료 분석에 의해, 혹은 벤치의 지시에 의해 타자마다 수비위치를 조금씩 바꾸거나 한다.
포수리드도 마찬가지다. 박경완이 1960년대에 그렇게 자세하고 수준높은 분석 레벨의 포수 수비를 펼쳤다면 그의 가치는 굉장히 높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구단이 데이터를 분석하고 미팅을 가지며, 배터리 코치가 포수들을 데리고 타자들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에 대해 의논한다. 한 타자에 대한 공략법은 그 타자가 약점을 극복하기 전까지 일정한 패턴으로 존재한다. 그 패턴을 어느 정도 익혀 놓기만 하면,
그리고 투수가 제대로 던진다면, 2004년의 Barry Bonds 같은 선수가 아닌 다음에야 그럭저럭 상대할 수 있다.
따라서 시간이 지날수록 영리한 포수가 리드에서 점하는 우위는 점점 줄어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 SK 포수들의 기록은 ISTAT(http://www.istat.co.kr)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