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스포츠 컬럼을 읽었다.
축구가 야구보다 뛰어난 10가지 이유http://sports.nate.com/Service/Sports/ShellView.asp?ArticleID=2008121610385701230&LinkID=249결론부터 말하자면, 블랙유머를 의도하고 글을 썼다손 치더라도 제목은 잘못되었다. 듀어든이라는 친구가 본인의 주장처럼 가볍게, 장난끼있게 글을 보여 주려고 했다면 제목은 축구가 야구보다 "뛰어난" 10가지 이유가 아니라, 축구가 야구보다
"재미있는" 10가지 이유로 정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재미가 있다, 혹은 없다의 문제는 개인의 가치판단의 문제이다. 반면 "뛰어난" 혹은 "뛰어나지 않은"이라는 표현은 한 대상과 다른 대상의 우열을 가린다는 의미가 처음부터 들어가 있는 표현이다.
애초에 듀어든 씨가 "나는 축구가 야구보다 재미있다고 생각해. 어쩌고저쩌고"라고 글을 썼다면 반박할 이유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자기가 좋아한다는데. 축구가 야구보다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축구를 보는 축구 팬들은 거기에 친밀감을 느끼거나 동조를 하면서 읽으면 되고, 야구 팬들은 "그렇군."하면 그만이다. 아니면 축구가 야구보다
"더 국제화된" 스포츠라고 하든가. 시장의 규모가 어떻든 간에 축구는 야구보다 더 널리 퍼진 스포츠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아는 스포츠이다. 그것은 야구팬이라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축구가 야구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해."라고 쓰는 순간 그 의미는 달라진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우월한 스포츠를 보는 팬들은 열등한 스포츠를 보는 팬들보다 우월한 존재인가? 도대체 어떤 스포츠와 다른 스포츠의 우월함과 그렇지 않음을 가리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종목을 가로지르는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는 행동이 플레이의 주를 이루는 스포츠라든가, 식인(carnivalism)과 같은 인간 이하의 행위를 경기의 주 종목으로 택하지 않는 이상, 모든 스포츠는 기본적으로 그 우월함을 가릴 수 없다. 이것은 영국과 우리나라의 가치관 차이가 아니다. 흔히 말하는 인류문화의 제일성에 근거를 둔 주장이다.
대중을 상대로 글을 쓰는 기자, 칼럼니스트, 작가는 표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글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보여 주는 제목이라면 더욱 그렇다. 듀어든이라는 친구는 많은 사람들이 글을 보게 하고, (나처럼) 이 주제를 가지고 열을 올리고 싶어하는 것을 너무 보고 싶었던 나머지 잘못된 단어를 선택했다. 아니면 중간 번역 과정에서 뭐가 잘못되었든가.
축구보다 야구에서 재미를 더 많이 찾아온 한 사람으로써 저 칼럼에 불쾌한 감정을 갖는 이유는 또 있다. 한 스포츠에 대한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로서 응당 가져야 할 다른 스포츠에 대해 존중하는 자세를 전혀 갖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제목을 애초에 저렇게 지어 놓았으니, 이런 기대를 가지는 것 자체가 무리이긴 하겠지만.)
축구 칼럼니스트가 야구에 대해 축구보다 적게 아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축구에 대해 어느 수준 이상의 지식을 갖추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니까. 축구 칼럼니스트가 야구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렇게 다른 스포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그만큼 다른 스포츠를 존중해야 할 것이다. 어떤 스포츠에 대해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무지하면서) 축구가 야구보다 나은 스포츠네,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웃기는 짓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면.
하지만 축구가 더 재미있는 종목인 것은 분명하다. 축구에는 감동, 속도, 드라마, 갑작스러운 충격 등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모든 요소가 있다. 89분간의 끔찍한 경기를 보다가도 아름다운 장면을 접할 수 있는게 축구다. 야구는 정지된 상황이 이어져서 진행되는 게임이며, 통계의 스포츠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야구의 중심은 투수가 던지는 공과 이를 치려하는 티자뿐이다. 반면 축구에서는 훨씬 많은 요소들이 경기의 상황과 연결된다. (4. 더 나은 종목 가운데)축구에 대해서는 "경기의 상황과 연결되는 훨씬 많은 요소"를 기준으로 이야기하면서, 야구에 대해서는 "투수가 던지는 공과 이를 치려 하는 타자"로 범위를 국한시켰다. 안타깝게도 야구 또한 훨씬 많은 요소가 연결된다. 그러니까.
누상에 주자가 나가 있다면, 투수와 포수는 주자를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퀵 모션(quick motion)이 제한되는 구종의 선택은 자제하게 된다. 만일 주자가 1루에 나가 있는 상황에서 그 투수가 오른손타자를 상대로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싱커볼을 잘 던지고, 타자가 오른손잡이에 밀어치기를 잘 한다면 수비에 들어가 있는 내야수들은 투수나 포수, 혹은 유격수의 손짓이나 모종의 신호에 맞춰 수비위치를 조절한다. 1루수는 투수가 타자에게 공을 던지는 순간 최대한 빠른 속도로 1-2루간을 커버하러 달려가기 위해 준비한다. 2루수와 유격수가 더블플레이 대형을 갖춤은 물론이다. 포수는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올 것을 대비하여 야수들에게 여러 가지 경우의 수에 맞춘 플레이도 머릿속에 넣을 것을 주문한다. 물론 1루 주자와 타자도 이런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상대방이 원하는 코스로 공을 치지 않고 공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배터리와 머리싸움을 펼친다.
이런 사실을 듀어든이라는 친구가 몰랐다면 그의 무지함에 찬사를 보낸다. 만일 이런 것을 알면서도 저런 글을 썼다면, 그는 가히 자가당착과 이중적인 원리 적용의 귀재라고 할 것이다. 야구가 "투수가 던지는 공과 이를 치려 하는 타자"만의 게임이라면, 축구도 "골을 넣고자 하는 선수와 골키퍼"의 대결이다.
투수와 타자만의 단조로운 대결만을 야구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디립다 공만 보고 뛰어가는 동네축구가 축구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이것뿐만이 아니다.
야구 팬들이 또 할 말이 많을 것 같지만, 야구계에 펠레, 크루이프, 마라도나에 필적할 인물들이 몇이나 있나? 이들 모두 다른 국적과 문화적 배경을 지닌 선수들로써 ‘축구’ 라는 언어를 통해 세계인과 소통한 영웅들이다. 요즘만 봐도 호날두, 무링요, 베컴, 갈라스 등은 국적-문화에 관계없이 세계인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7. 인물들 가운데)"모두 다른 국적과 문화적 배경을 지녔다는 것"과 "야구의 영웅들에 비해 축구의 영웅들이 더 위대하다"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야구에도 눈물의 은퇴경기를 한 Lou Gehrig이 있고 자신이 야구를 통해 이룬 부와 명예를 고국의 어린이들에게 나눠 주려고 노력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Roberto Clemente가 있으며 인간 이상의 수비로서 팬들과 소통했던 Ozzie Smith가 있다. 또한 2006년부터 많은 국내팬들이 비호감으로 돌아섰으나, 나는 아직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Ichiro Suzuki의 정신을 높이 평가한다. Diego Maradona를 언급한 것을 보면 듀어든이라는 친구는 선수의 사생활이나 도덕성의 기준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니, Babe Ruth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이쯤 되면 굳이 나에게 양준혁이 어떤 존재인가를 말할 필요까지도 없는 것 같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한 스포츠에 영웅이라 불릴 만한 훌륭한 선수가 많다고 해서 그것이 다른 스포츠에 존재하는 영웅들을 깎아내리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이는 상식이다.
한 가지 더.
해외 진출을 꿈꾸는 한국 축구 선수들은 영국, 독일, 네덜란드, 러시아, 일본 등 다양한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야구에서의 기회는 미국과 일본으로 극히 제한된다. (9. 기회 중)축구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한국의 축구 선수들이 문화와 국가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는 것을 얼마나 긍정적인 요소로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궁금하다. 중요한 것은 시장의 규모와 등급, 그러니까 돈과 리그의 수준 아닌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PSV 아인트호벤, 시미즈 S-펄스가 똑같이 최고 수준의 대우를 해 주겠다고 제안했을 때 시미즈 S-펄스를 선택할 선수가 몇 명이나 될까? 이는 축구라는 스포츠 안에서 생각해도 모순이 되는 주장이다. 축구가 야구보다 더 세계화되어 있다는 점을 자랑스러워하고 싶은 마음은 십분 이해하겠으나, 말을 잘못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다른 스포츠에 대해 그 스포츠의 팬들만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최소한 존중이라도 해야 한다. 이글루스에 글이나 쓰고 앉아 있는 나 같은 사람도, 축구와 야구를 비교하는 이 글에서조차 축구를 비하하거나 야구에 비해 한 수 아래라는 내용의 문장을 적지는 않았다. 평소에 야구가 축구보다 뛰어난 스포츠라고 생각해 본 적도 별로 없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제목을 저렇게 뽑고 글을 저렇게 쓴 것인가?
듀어든 본인은 의미를 별로 두지 않은 가벼운 블랙유머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음이 아쉽다. LSE라는 세계 유수의 명문대학을 졸업한 축구의 종가 출신 칼럼니스트가 다른 스포츠에 대해 그 정도의 이해력과 존중심밖에 갖추지 못한 것은 더 아쉽다. 듀어든의 칼럼은 축구팬들의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 만일 저런 수준의 근거를 들어 가며 야구가 축구보다 뛰어난 스포츠임을 유머랍시고 칼럼으로 써제긴 야구 칼럼니스트가 있다면, 나는 오히려 부끄러울 것 같다.
본문수정 (2008년 12월 17일 오후 4:00)"사족"에 해당하는 부분을 삭제하였습니다. 평소에 궁금헀던 부분이기는 하지만, 주가 되는 본문과 같은 글을 작성한 상태에서 이런 추가글을 붙이는 것이 적절하지 못한 행위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해당 부분의 글에 대하여 기분 나쁜 생각을 가지셨던 축구 팬 분이 계신다면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