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이나 화학이 내 전공도 아니고, 막상 적어 놓고 나니 제목이 다소 황당한 듯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바와 제목이 합치되기 때문에 고칠 생각은 없다. -_-;
현대 물리학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우리 우주의 물질계는 약 20여 개에 달하는 상수의 값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주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인 동시에 가장 약한 힘이기도 한 중력 상수, 전자의 질량처럼 어떠한 물리법칙에 들어가 있는 상수들은 말 그대로 "고정된 수"이지만, 법칙 내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함으로써 우리 우주의 현재 모습을 형성해 왔다. 링크해 놓은 ExtraD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23개의 레버가 달린 기계 앞에 서 있는 창조주는 우리 우주를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진화시키기 위해 레버를 조정하고 Big Bang을 일으킨 다음 130억 년을 기다리는 일을 한 셈이다.
만일 이 상수의 값이 변한다면 세계는 (우리가 알고 있으며 익숙한) 지금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버릴 것이다. 예컨대 중력 상수는 꽤나 작은 값이지만 우리 우주에 존재하는 어떠한 대상(object)에도 적용되는 상수이므로, 이것이 10배쯤 커진다거나 10배쯤 작아진다면 말 그대로 shocking한 광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60kg의 체중을 가진 정상적인 사람이 30cm 높이의 계단 위에서 뛰어내려도 죽을 수도 있고, 공부를 하던 도중 연필을 떨어뜨렸는데 그 떨어지는 속도가 광속의 100분의 1에 가까울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중력 상수가 그 정도로 커진다면 이미 천체들의 운동에 chaotic한 변화가 있을 것이므로 지구에 살아남을 수 있는 인류는 없다고 봐야 하겠지만.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왜 조물주가 그 상수의 값에 레버를 갖다 놓았는지" 궁금해한다고 한다. 한 가지 가능성은 A. Einstein이 어렴풋이 제시한 통일장 이론의 가능성 이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더욱 간결한 우주의 법칙"이다. 지금 당장은 레버가 스무 개 정도로 보이지만 사실 창조주가 직접 움직이는 레버는 두세 개에 불과할 수도 있고, 스위치의 형태를 띤 한 개의 레버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다른 물리 상수들은 조물주가 스위치를 딸깍 건드리거나 몇 개의 레버를 조작하는 순간 자동으로 setting되는 셈이다. 또 다른 가능성으로는 우주의 형태는 본래 유일하지 않으며, 우리 우주는 생명이 태동하고 지적인 생명체가 진화할 수 있도록 조정된 여러 가지 레버의 조합(내지는 슬라이더) 가운데 한 종류라는 것이다.
아무튼 확실한 것은 "법칙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렇게 설정된 상수들이 규정하는 우주 속에서 생명체가 태동했고 인간이 탄생했다. 그리고 이제 인간은 그 상수의 설정 영역 - 신의 영역 - 에 도전하고 싶어한다. 끊임없는 지적 호기심을 통해.
우주의 법칙과 야구의 규칙은 얼핏 봐도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둘 다 규칙이 지배하는 가운데 여러 개체가 그에 따라 반복적으로 어떠한 현상(내지는 생명의 명멸, 득실점, 피홈런 등등...)을 보여 준다는 데에는 동일하다. 그리고 만일 그 법칙 혹은 규칙이 조금이라도 바뀐다면, 더 이상 그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 혹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야구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도 비슷한 점이다.
야구에도 우주의 그것만큼 여러 가지 상수들이 존재하고, 그에 따른 법칙이 존재한다. 굳이 이야기하면 "아웃카운트 보존의 법칙" 같은 것들. 정규 야구 경기에서 모든 팀은 한 경기당 27개의 아웃 카운트 내에서 움직인다. 스트라이크 세 개면 타자는 더 이상의 타격 기회를 가질 수 없다. 마찬가지로 투수가 타자에게 볼 네 개를 내주면 타자는 아웃당할 염려 없이 1루까지 진루할 수 있다. 타자가 투수의 공을 받아쳤으나 그 공이 최종적으로 파울 존에 떨어졌고, 그 때 스트라이크가 2개 미만이었다면 그것은 스트라이크로 간주된다. 타자가 친 공이 하늘에 떴고 그것이 땅에 닿기 전에 야수에게 잡혔다면 주자는 일단 원래 점유하고 있던 베이스로 돌아가야 한다. 아웃카운트가 연속으로 3개 누적되면 모든 주자는 덕아웃으로 돌아와야 하며 공격의 기회는 상대팀에게 넘어간다.
규칙의 한도를 넘어선 규격도 있다. 홈 플레이트에서 홈런을 결정짓는 페어 지역의 펜스까지의 거리는 최소한 250피트여야 한다. 투수가 공을 던지는 마운드에서 홈 플레이트까지의 직선 거리는 60피트이며 베이스와 베이스 사이의 직선 거리는 90피트이다. 내야의 다이아몬드는 역시 마름모 가운데에서도 일정한 규격을 가지고 있다. 야구공의 규격 역시 일정 수준 내의 오차범위만 허용될 뿐, 기본적으로는 동일한 무게와 크기를 지녀야 한다. 마운드의 높이는 리그의 규정에 따라 변하지만, 추가적인 변화가 있기 전까지는 역시 일정한 높이로 유지된다.
그러한 가운데 오늘날의 야구 경기가 탄생했다. 그리고 묘하게도 야구 경기의 여러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기록과 통계들은 모두 일정한 범위 내에서 움직인다. MLB에서 풀 타임으로 출전했을 때 타율 4할을 기록한 선수는 1940년대의 Ted Wiliams가 마지막이었다. 2004년의 Barry Bonds가 그토록 신적인 존재였던 이유는 그가 기록한 6할 이상의 출루율과 14할 이상의 OPS가 100년을 가로지는 야구의 역사에서 다시 나오기 어려운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1986년의 선동열을 기억하는 키워드는 250이닝 이상 던지면서 9이닝당 평균 1점도 허용하지 않았다는 "인간 이상의" 기록이다.
만일 볼넷의 규정을 "볼셋"으로 바꾸면 어떨까? 당장 출루율 4할 이상을 기록하던 좋은 타자들의 출루율은 Barry Bonds와 비견되는 수준으로 껑충 뛰어오를 것이다. 경기당 평균 득점과 투수들의 방어율은 최소한 2점 이상 상승할 것이고, 컨트롤이 좋은 투수의 가치는 극히 높아질 것이다. 반대로 스트라이크를 2개만 잡아도 타자에게 아웃을 선언한다면 컨택이나 선구안이 좋은 일부 타자들을 제외한 모든 타자들은 올해의 허승민 같은 성적을 낼 것이다. 페어 지역의 담장을 노 바운드로 넘어간 공에 대하여 모든 베이스의 안전 진루권을 인정하지 않고 3개 베이스의 안전 진루권만 인정한다면, 경기당 평균득점은 "볼셋" 야구 수준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떨어질 것이다. 어떤 경우든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규칙이 바뀐다면, 그것을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있는 야구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할지도 신중히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야구는 현재의 "상수" - 규칙 - 조건 아래에서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이나 미세한 외생적 요인의 변동이 발생했을 때 그 균형이 어떻게 흔들리는가는 1993년이나 1999년의 시즌결과가 답해 준다. 투수들이 어깨를 펴는 날도 있고, 타자들이 위세를 떨치는 날도 있어야 재미있는 야구다. 그리고 그것이 "베이스볼"이다.
놀라운 것은 이 야구라는 스포츠의 규칙이 완전히 제정된 지 100년도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명타자 제도라는 혁명적인 규칙의 변화를 제외하면, 최근의 80년 동안 균형에 영향을 미치는 규칙의 변화는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은 더욱 놀라운 사실이다. 우리 인간이 현재와 같은 우주 상수들의 존재 하에서 태어났듯이, 우리가 열광하는 야구라는 스포츠도 현재와 같은 규칙과 규정 아래에서 우리를 웃기고 울리고 있다.
물론 세계를 창조한 조물주와 야구를 창조한 미국인들을 동일 선상에서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이 만약 존재한다면 불완전한 인간보다는 훨씬 우월하며 위대한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그 불완전한 인간들이 짧은 시간에 걸쳐 다듬은 야구라는 스포츠는 이렇게도 절묘하며 또한 바람직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마치 "레버"를 찾기 위한 물리학자들의 도전 대상인 창조주의 우주처럼.
추신 : "승부치기"가 도입된 야구를 야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주자 없는 노 아웃"이 아닌, "10회 이후 노 아웃 주자 1, 2루"에서 시작하는 그 스포츠도 야구로 판단해야 하는 것인가? 위와 같은 이유로, 나는 그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