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이 망가지는 여덟 가지 이유.


사람이 비록 공부하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 학문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오래된 습관이 가로막아 방해하기 때문이다. 오래된 습관의 조목을 다음에 열거한다. 만일 뜻을 매섭게 하여 이것들을 과감하게 끊어 버리지 않는다면, 끝끝내 학업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첫째, 마음과 뜻을 게을리하고 몸가짐을 함부로 하면서 한가롭고 편안한 것만 생각하고 자신을 단속함을 몹시 싫어하는 것.

둘째, 항상 돌아다니기만 생각하여 조용히 안정하지 못하고, 분주히 드나들면서 이야기로 세월을 보내는 것.

셋째, 자신과 같은 부류를 좋아하고, 다른 부류를 미워하며, 시속(時俗)에 빠져 있고, 이런 자신을 조금 고쳐보려 하다가도 무리로부터 따돌림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것.

넷째, 글로써 시류(時流)에 칭찬받기를 좋아하고, 경전의 글귀를 표절하여 문장을 꾸미는 것.

다섯째, 편지 쓰기에 공을 들이고, 거문고를 타거나 술 마시는 데 탐닉하여 빈둥빈둥 세월을 보내면서 스스로 그것이 맑은 운치라고 말하는 것.

여섯째, 한가한 사람들을 모아 바둑이나 장기 두기를 좋아하고, 종일토록 배불리 먹으면서 논쟁만 일삼는 것.

일곱째, 재산이 많고 지위가 높은 것을 부러워하고 가난하고 지체가 낮은 것을 싫어하여, 베옷을 입고 거친 음식을 먹는 것을 몹시 부끄럽게 여기는 것.

여덟째, 욕심에 절도가 없어 능히 끊어 버리거나 절제하지 못하고 돈과 노래와 여색에 빠져 그 맛을 꿀맛처럼 여기는 것.


오래된 습관이 마음에 해를 끼침이 이와 같거늘, 그 밖의 것은 일일이 다 들기 어렵다. 이러한 습관은 사람의 뜻을 굳고 단단하지 못하게 하고 행동을 독실하게 하지 못하게 해서, 오늘 한 것을 다음날에 고치기 어렵게 하고 아침에 그 행동을 뉘우쳤다가도 저녁에는 다시 그대로 하게 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용맹스런 뜻을 크게 떨쳐 마치 단칼로 뿌리와 줄기를 베어 버리듯 하고, 그 마음을 깨끗이 씻어 털끝만한 것도 남기지 않으며, 수시로 크게 반성하는 노력을 더하여 마음에 한 점도 나쁜 습관이 남아 있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학문에 나아가는 공부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박희병 편역, <선인들의 공부법>, 창작과비평사, 1998,
서울대학교 대학국어편찬위원회, <대학국어>,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에서 재인용


옛 성현의 말씀이 나태한 이의 폐부를 찌른다. 선생의 시대로부터 시간은 그리도 많이 흘렀건만, 그 말씀의 참됨은 어쩌면 아직도 이리 그대로일 수 있는지. 한가롭고 편안한 것만 생각하고, 글을 써서 칭찬받는 것만 좋아하고, 잡기에 심취하고, 욕심에 절도가 없는 사람 가운데 한 명으로서 깊이 반성하고 받아들여야 할 말씀이다.



by Lucid | 2008/12/26 13:51 | Miscellaneous | 트랙백(1) | 덧글(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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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젊음의 순진 at 2009/01/26 19:26

제목 : 대학생의 망
대학(원)생이 망가지는 여덟 가지 이유.현재 읽고 있는 '한국철학 에세이' 중 율곡 이이를 소개하는 장에서 상당히 감명을 받은 바 있다. 그래서인지 좀 더 깊고 날카롭다. 이렇게 트랙백 해오는 이유는 언제든 나의 방종과 나태를 내게 고하기 위해서....more

Commented by Kain君 at 2008/12/26 15:01
아아 역시 율곡 대인의 말씀은...ㅠ.ㅠ
Commented by Lucid at 2008/12/27 04:00
성인은 성인입니다.
Commented by Hadrianius at 2008/12/26 17:04
명문이네요...
Commented by Lucid at 2008/12/27 04:01
시대가 다르기에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본질적으로는 21세기에 더 적합한 내용이죠.
Commented by 소피아 at 2008/12/26 17:12
으악 다 제 얘기 같아요 ㅠㅠ
Commented by Lucid at 2008/12/27 04:01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Hyunster at 2008/12/26 18:22
으윽..ㅠㅠ
Commented by Lucid at 2008/12/27 04:03
저와 같은 감정을 느끼신 것 같군요.
Commented by 라미얀 at 2008/12/26 19:56
쿨럭....
Commented by Lucid at 2008/12/27 04:03
:)
Commented by rezen at 2008/12/26 20:23
틀린말이 하나도 없네요.
Commented by Lucid at 2008/12/27 04:03
율곡선생도 저 중 걸리는 것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긴 합니다.
Commented by skibbie at 2008/12/26 21:08
진리네요. -_-
Commented by Lucid at 2008/12/27 04:02
생각할 여지를 많이 남기는 좋은 글입니다.
Commented by 아문 at 2008/12/26 22:11
몹시 찔려 하는 나태한 이 하나 지나갑니다 으윽;;
Commented by Lucid at 2008/12/27 04:02
나태하기로는 저만한 사람이 있을지 :(
Commented by 사묘 at 2008/12/27 00:54
지나가던 이 통렬히 반성하고 갑니다.
Commented by Lucid at 2008/12/27 04:02
저도 항상 반성하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도파 at 2008/12/27 18:39
불평하기 앞서 게으르지 않았나 반성해야겠습니다...^^;
Commented by Lucid at 2008/12/27 21:50
율곡선생의 관점에서 게으르지 않은 사람은 극히 드물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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