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elody. by Luc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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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잘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평가를 내릴 때 나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한국경제에 대한 1960년대적인 사고방식이다.
물론 한국경제는 예나 지금이나 내수시장의 비중이 매우 적고 상위 30대 기업의 재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정부가 주도하는 각종 정책과 규제가 기업활동을 선도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대단히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경제 살리기라는 한 가지 구호로 밀어붙여 당선된 대통령은 새로운 경제부처의 컨트롤 타워에 IMF 시절 고위 경제관료를 지냈던, 수출 중심의 대한민국 경제에서는 고환율 정책이 최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을 앉혔다. 그는 장관에 취임하자마자 자신의 믿는 바를 행동으로 옮겼고, 이는 2008년 전 세계적인 금융시장의 대 파국과 뒤이은 실물경제의 위기와 연계되며 최악의 결과를 낳게 된다.
이러한 경제정책과는 별도로 이명박 정부는 대선 캠프 시절부터 꾸준히 주장했던 대운하 건설을 지난 1년 동안 표현을 바꿔 가며 계속 시도한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의 비경제성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으므로 여기서 더 논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명박 정부가 "뉴 딜(New Deal)"이라는 왠지 좋아 보이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며 추진하는 경기부양 정책의 성격이다. 도로 / 철도사업 집중투자, 4대 강 살리기, 경인운하 조기 추진, 보금자리주택 공급, 산업단지 조기 개발 등은 모두 한반도 대운하와 동일한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는 산업분야에 속하는 경제정책들이다.
비록 그 결과가 상당히 부정적으로 나올 것 같기는 하지만, 이러한 개별 사업은 비용편익분석의 결과가 타당하게 나온다면 그 자체로는 해 봄직하다. 문제는 2000년대의 한국경제에서 전략적으로 최적인 산업분야 - 동일한 비용투자로 세계적인 차원에서 그 우위를 확보하며 장차 산업과 기술의 발전에서도 leading edge를 선점할 수 있는 - 는 저런 분야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이 1960년대라면, 이명박 정부가 종교적 교리에 가까운 절대성을 내세우며 추진하고 있는 "국가가 주도하는 대대적인 사회간접자본의 확충과 각종 건설정책"은 marginal cost보다 marginal benefit이 월등히 높으며 뒤이은 공업 주도의 경제발전도 기대할 수 있는, 나름대로 나쁘지는 않은 생각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지금은 2000년대이다.
현대 세계경제의 흐름과 과학기술의 발전상, 그리고 맨날 나오는 이야기인 "부존자원의 부족과 좁은 국토"라는 한국경제의 비용구조를 토대로 생각건대, 지금의 한국경제에서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분야는 정보기술산업(IT)과 이를 떠받치는 고급 인적자본(human capital)의 생산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한국경제에서 최적화된 human capital의 양태가 적은 임금을 받는 규격화된 인적자본, 한 마디로 저임금 공업 노동력이었다면 지금은 - 거칠게 말해서 - 말 그대로 지식경제를 주도할 수 있는 고급인력일 것이다.
그러나 대단히 안타깝게도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지금까지 IT 분야나 고등교육에 대한 단 한 가지의 지원정책도 대운하 및 각종 "한국형 뉴 딜"만한 scale로 표방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적대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는 그 실체가 불분명한 저탄소성장, 녹색기술을 내세우고 있으며, 행정부의 수반은 "IT로는 일자리를 창출할 수 없다." "IT로는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고 있다. 이는 대단히 유감스러운 발상이며, (만일 이 노선이 정권 끝까지 지속될 경우) 이 정부 최악의 한 수로 평가받을 것이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가 생각하는 한국경제가 나아갈 길은 경인운하의 건설과 4대 강 정비 사업, 도로 / 철도사업 집중투자에 있기 때문에, 자연히 교육정책도 그 시대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어느 정부가 그러지 않았겠냐마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도 "학생이 대학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에만 부단히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대가 원하는 전문인력의 양성 혹은 한국의 경제발전의 원동력을 담당할 기초학문에 대한 육성, 30대 이상 인구에 대한 재교육 정책, 일정 소득수준 이하의 가계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통한 "기회의 평등" 부여는 당연히 뒷전일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전국 단위 학업성취도 평가와 국제중학교 설립이다.
사회민주주의적인 발상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교육수준의 격차 발생에 따른 사회적인 불평등의 양산과 계급의 공고화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책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네 부모님들의 교육 정서는 affirmative action과 같은 적극적인 교육기회 부여를 통한 평등 추구정책을 허용할 수 없을 것이며, 본고사나 수학능력시험 및 기타 이와 유사한 방식의 전국적인 "한 가지 기준의 줄 세우기" 이외의 방법을 통한 대학입학의 길 확대 또한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차라리 영미의 prep school과 유사한 형태의 사립 고교를 여럿 만들어서 황당할 정도로 높은 수업료를 제시한 다음, 그 재원으로 교육의 기회를 제대로 부여받고 있지 못한 계층을 지원하는 방식의 "천박한 발상" 쪽을 기대하는 것이 훨씬 낫다. 물론 현재의 정부는 이런 쪽도 생각해 보지 않은 듯 하다.
정치적 성향과 이념에 대한 평가를 배제했을 때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잘못이 그릇된 경제정책과 산업관이라고 한다면, "나"라는 개인의 민주주의에 대한 관점과 정치적 성향을 대입했을 때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잘못은 권위주의에 대한 향수와 절차적 민주주의를 무소불위의 만능이라고 간주하는 사고방식이다.
노무현 정부가 다른 것은 다 평균 이하였다고 하더라도 딱 하나 잘 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대통령의 (자발적인) 권위 하락에 따른 권위주의의 해체 현상이다. 사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대통령을 임금이나 나랏님과 동일시하며 살아 왔다. 그런데 전임 대통령은 이를 스스로 해체시키는 쇼를 벌인다. 그를 달가워하지 않았던 한국의 사회적 기득권 계층과 주요 언론은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대단히 자주 쏟아냈다. 언론에 의해 노무현은 대통령 할 적에는 입만 살은 개구리 내지는 쌍꺼풀 수술한 정신병자였고 대통령에서 물러난 다음에는 노방궁에 거주하는 불평불만분자가 되었다. 대통령의 권위, "각하께서 지시하신 것이라면 우리들 국민은 일단 따르고 보아야 한다"는 생각은 그에 비례하여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사회 기득권 계층과 주요 언론의 무한한 지지를 받고 입만 살은 개구리가 결딴낸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강림하였으므로, 대통령의 권위 살리기 및 권력의 중앙집중화, 소위 "공권력"의 강화와 같은 분야에 대단히 관심있어하였다. 헌법이 규정한 바 정당한 공공의 이익을 지키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국민의 기본권을 일부 제한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은 이명박 정부에 이르러 모든 다른 기본권론을 압도하는 조항이 된 듯 하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에게 교과서 수정은 역사학을 가르치고 교과서를 집필한 교수와 교사들의 의견 같은 것은 들을 필요 없는 시대적 과업이고, 대운하는 일부 무지한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서라도 끝까지 수행해야 하는 문명사적 의무이며, 언론노조의 파업과 촛불집회는 헌정질서를 침해하는 명백한 불법행위이기에 전 국가의 운명을 걸어서라도 반드시 틀어막아야 하는 친북좌파적 행위이다. 일반 시민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으면 참아야 하지만,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발상은 소위 "최진실법"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사이버명예훼손에 관련된 법안의 제안과 언론법의 수정을 통한 "권위 다시 세우기"로 이어졌다.
그러므로 현 정부와 여당에서 주장하는 "잃어버린 10년"에서 '잃어버린'의 수사를 받는 단어는 경제보다는 대통령과 정부의 권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말과 생각에 따르면 이 권위는 "국민 여러분들께서 다시 찾아 주신" 것이다. 기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정책에 내포되어 있는 "대통령과 다수의 국회의원이 헌법에 보장된 정당한 절차에 따라 당선되었으므로, 모든 국민은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하여 긍정의 박수를 보내야 하며 민주주의의 측면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즘"은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도 나오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개념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따지면, 저 유명한 Hitler의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도 정당한 절차에 의해 선출된 민주주의 정권이다.
물론 나치스와 현 대한민국 정부는 엄청난 정도의 차이가 있다. 현 정부는 유태인을 수용소에 잡아 가두고 마구 죽이지도 않으며, 전국적인 규모의 비밀경찰제도를 운용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대통령과 다수의 국회의원이 헌법에 보장된 정당한 절차에 따라 당선되었으므로, 모든 국민은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하여 긍정의 박수를 보내야 하며 민주주의의 측면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즘"을 아무렇지도 않게 표방하는 현 정부의 일부 인사들과 어떤 사람들을 보면, 나는 나치스의 역사를 읽고 느끼는 소름끼침과 버금가는 무서움과 슬픔을 느낀다.
종합하자면 이명박 정부는 좁은 의미의 절차적 민주주의의 정당성과 헌정질서의 수호를 통한 행정부의 권위 신장을 표방하며, 1960년대에 한국경제가 추구했던 방식의 경제성장을 그대로 가져와 다시 한 번 "한강의 기적"을 이룩해 보자는 산업정책을 추진하는 정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여러 모로 "최악"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뜬금없지만 진중권 이야기. 나는 개인적으로 진중권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진중권과 견해를 같이하는 부분도 분명 있지만 그의 말하고 글 쓰는 방식은 전투적이며 저돌적이다. 그리고 이는 내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러나 지난 100분 토론에서 진중권이 한 이런 이야기는 대단히 공감이 간다. "요즘 정부 비판하는 글을 쓰면 진중권 씨 몸 조심하십쇼. 하는 답글이 먼저 떠요. 2~3년 전에도 나 싫어하는 사람들 많았고 정부도 나를 별로 안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그런 일은 없었어요.
설마 잡아가기야 하겠냐구요? 글쎄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 문제라니까.">
# by Lucid | 2008/12/27 03:32 | Political sciences | 트랙백 | 핑백(1)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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