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관계법 개정안을 강행처리하려는 한나라당에 반발하여 언론노조가 총파업을 일으켰다.
물론 모든 노동조합의 파업은 기본적으로 "자기 밥그릇 챙기기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글 마지막에 잠깐 말하겠지만, 언론관계법 개정안이 100% 악법의 요소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이번 개정안이 대한민국의 정치적 현실에서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이며, 결론은 다소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언론관계법 개정안이 통과되었을 때 재벌이 미디어를 소유할 강력한 경제적 유인이 존재한다는 것은
다음의 글에서 잘 확인할 수 있다. 글쓴 분의 핵심논지를 요약하자면, 개인에 비해 재벌은 언론사의 주식을 더 많이 살 유인을 가지고 있으며 언론사를 소유하게 되었을 때 생산되는 상품(미디어 컨텐츠)의 성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통제할 유인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덧붙여, 여기에서 더 생각해야 할 것은 재벌, 혹은 신문사가 미디어를 소유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어떠한 함의를 가지느냐이다.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재벌의 미디어 소유는 국가 차원에서 한국정치경제사회의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는 냉전반공주의적인 이데올로기를 신념으로 삼고 있는 집단에 대한 결집성을 강화시키고, 시민사회 차원에서는 보수 헤게모니의 결집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전방위적으로 가속화할 것이다. 최장집 교수가 지적한 바 민주화 이후 새롭게 나타난 현상은 여론형성의 공간인 공론의 장에서 보수적 거대언론의 역할이 크게 확대된 것이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로 대표되는 이들 신문언론은 구질서와 냉전반공 헤게모니의 수호자이자 대변자로서 기능하고 있다.
역사적이고 전략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집단과 이해관계를 같이 해 온 한국의 재벌이 방송을 비롯한 미디어를 직접 소유하고 경영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될 경우, 이들이 생산하는 정치 관련 컨텐츠의 특성은 보수적인 이데올로기를 확대 생산하는 방향으로 나타날 것이다. 또한 시민사회의 영역에서 이들의 생산하게 될 컨텐츠는 "뉴 라이트" 계열의 사회집단과 정치적 이해 및 성향을 같이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재벌의 미디어 소유는 한국사회의 정치경제적인 최상층의 요구를 대변하고 이들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강화할 것이다.
둘째, 재벌의 미디어 소유는 정경유착의 부정적인 영향력을 확대시키고 그렇지 않아도 낮은 시장의 자유경쟁도를 현저히 낮출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다시한번
고율님의 글을 인용한다 : 재벌은 언론사를 생산 계열에 포함시킴으로써 기업의 생산활동에 대해 불이익이 되는 정보를 차단할 수 있으며, 기업 소유주의 불법활동에 불이익이 되는 정보를 차단할 수 있다.
물론 재벌이 언론사를 직접 소유하게 되면 이들은 언론사의 생산품인 미디어 컨텐츠를 통해 별도의 광고비용 지출 없이 제품을 홍보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는 거래비용(transaction cost)를 낮출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기업이라는 제도가 만들어지는 요인, 즉 내부화(internalization)와도 관계가 있다. 그러나 이는 재벌 기업집단의 관점에서 본 전략적인 이득이며, 사회적인 차원에서 거래비용의 절감을 통한 이득은 앞에서 말한 시장의 투명성 저해와 기업 소유주의 불법활동에 따른 시장 왜곡이라는 손해보다 작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학적인 관점에서 기업 소유주의 불법활동과 정치-경제 영역의 거래비용의 절감은 곧 정경유착의 심화와 자유경쟁시장의 공정성에 대한 저해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정치경제사에서 나타난 재벌의 행동패턴과 정부의 의사결정을 토대로 미루어 짐작건대 이는 사회 전체의 투명성을 훼손시키고 세계적인 차원의 경쟁력도 약화시킬 것이다. 물론 재벌은 이러한 부정적인 외부효과에 대하여 아무런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업의 비용이 5, 기업의 이득(benefit)이 10이라면 사회 전체의 비용은 이득보다 클 것으로 예측된다. ("얼마나 클 것인가?"는 이 글의 논의 수준을 벗어나는 것으로 판단되므로 논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셋째, 재벌 소유의 미디어에서 생산되는 컨텐츠는 긍정적인 외부 효과를 창출하는 요소보다는 기업 전략적인 차원에서 "이윤 극대화"를 창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집중될 것이다. 즉 이윤 극대화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양질의 뉴스, 다큐멘터리, 심층취재, 토론 프로그램과 같은 - "민주주의적인 문화"와 시민들의 판단력을 증진시킬 것으로 판단되는 - 컨텐츠보다는, 양질의 드라마, 토크쇼, 패션 정보 프로그램, 기타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는" 대중문화 및 예술과 관련된 컨텐츠가 많이 생산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물론 후자의 컨텐츠를 선호하는 소비자(시청자)들도 많다. 그들에게 이러한 컨텐츠의 증가는 효용의 증가를 의미한다. 그리고 재벌 소유의 미디어에서 생산되는 드라마나 토크쇼, 대중문화 및 예술 컨텐츠는 현재 공중파 TV에서 방영되는 컨텐츠보다 질적으로 우수할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그래서 드라마 앞에 '양질'이라는 글자를 붙인 것이다.
문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전자의 컨텐츠가 내포하고 있는 정치적이며 문화적인 가치, 그리고 컨텐츠 특성의 집중이다. 24나 The West Wing, Gilmore Girls와 같은 좋은 드라마, 이하나의 페퍼민트나 김윤아의 마담 B의 살롱과 같은 문화 컨텐츠는 분명히 좋은 상품이며 사회에 긍정적인 편익을 창출할 수 있다. 그러나 케이블 채널도 아닌 공중파 채널에 이러한 방향의 컨텐츠가 말 그대로 집중 생산된다면, 정치학적인 관점에서는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전자의 컨텐츠를 통해 미디어가 창출할 수 있는 정치적 공론장(the Arena)을 비롯한 각종 긍정적인 외부효과는 아마도 대폭 축소되거나 사라질 것이다.
넷째, 재벌의 미디어 소유는 현대 한국정치에서 반드시 필요한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희박한 요소인 공화주의적인 가치를 제로(0)화할 것이며, 정치적 담론 영역의 스펙트럼을 축소시킴으로써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를 질적으로 훼손시킬 것이다. 첫째에서 셋째의 논지를 아우르는 결론. 근대 민주주의 사상에서 주로 "토지소유에 대한 일정 수준의 평등성 담보"와 같은 형태로 나타난 공화주의의 전제조건은 오늘날의 정치사회에서는 사회의 특수 이익들이 사회에서 큰 역할과 영향력을 갖는 만큼 책임성과 공공성을 요구하는 형태로 재현된다.
그러나 IMF 시대 이후 가속화되는 한국사회의 경제적 불평등과 교육을 통한 사회계층 간 이동 가능성의 축소, 상층 계급문화의 확대 재생산은 그렇지 않아도 제도권 정치영역에서 대단히 희박했던 공화주의의 가치를 빠른 속도로 침식해 가고 있다. 이는 종합부동산세제의 위헌 판결, 국제중학교의 설립과 교육정책의 방향전환, 최저임금제 개편 등 2008년의 모든 주요 issue와 맞물리는 현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벌이 미디어를 소유하게 된다면, 자유주의와 함께 한국의 민주주의 정치사회와 시장경제체제를 지탱해야 할 공화주의의 기반은 말 그대로 0에 가까워질 것이다.
정당정치와 정치제도를 연구하는 여러 학자들이 지적한 바,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정당정치의 저발전이다. 많은 사람들이 누차 언급하듯이 현재 한국정치의 정당구도는 계급이나 이념과 같은 균열(cleavage)에 전혀 기반을 두고 있지 않다. 그것은 차라리 지역주의라는 향리적인 요소와 경제적 상위계층의 이해관계, 북한이라는 반 국가단체의 존재와 여기에서 탄생하는 냉전반공주의 이데올로기의 압도성과 같은 말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은 부패하고 무능하다. 그런데 민주당도 마찬가지로 부패하고 무능하다.
종의 다양성이 보존될 때 생태계가 선순환을 그린다는 자연과학적인 공리를 굳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양한 의견이 대표되는 여러 스펙트럼을 가진 정당과 정치단체들이 대결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함은 자명하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언론관계법 개정안은 이러한 한국정치의 부정적인 특성을 극단까지 몰고 갈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정부의 평가에 대한 글에서도 지적했듯이, 현재 정부와 집권 여당이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마인드인 "대통령과 다수의 국회의원이 헌법에 보장된 정당한 절차에 따라 당선되었으므로 모든 국민은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지지하고 있으며 이는 절차적인 민주주의의 측면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즘"은 직접선거제도나 대통령제가 민주주의와 동의어라는 그릇된 생각을 사람들에게 심어 준다. 그리고 이는 결코 옳은 일이 아니다. 언론관계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재벌이 미디어를 소유하게 된다면, 궁극적으로 이러한 생각은 그들이 생산하는 컨텐츠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빠르게 전파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치학적인 관점에서 언론관계법 개정안은 결코 민주주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재벌은 언론사를 소유할 수 없어야 하며, 허용하더라도 강력한 제도적 장치를 통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여지를 차단해야 한다.언론관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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