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잡생각 몇 가지.


1. 경제를 반드시 살리겠다는데, 그건 적어도 마음대로 살리고 죽일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그랬으면 진작에 아무나 경제를 살렸겠지. 1962~85년까지 한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8%, 1986년부터 1997년 중순까지는 연평균 5%였다. 그 직후 한국은 IMF 위기를 맞았고, 지금은 거기서 또 10년이 지났다. 여기에서 연평균 7% 성장을 외치는 사람은 빨갱이다. 주류 우파경제학의 논리에 따른 예측과 근본적으로 배치되니까. 경제원론 책은 폼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한국의 영해에서 중동 수준의 유전이 발견된다거나, 그야말로 엄청난 기술혁신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져 전 세계가 그 기술로 먹고 살아야만 하는 상황이 오지 않는 이상 747 공약은 절대 실현될 수 없다. 이것은 나의 공허한 저주가 아니다. 사회적 상식 수준의 논의일 뿐. 바꿔 말하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인지도 명쾌히 알 수 있다.


2. 4대 원칙에 입각한 선거제도가 보장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각 정당의 강령과 입법부의 운영 및 갈등구조는 기본적으로 시민들의 정치문화와 의식수준을 따라간다. 그러므로 지금의 난리통이 100%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의 책임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현실이 민주주의니까 수긍하고 체념하라는 것은 아니다. 최소정의적인 민주주의만이 민주주의는 아니니까.

사람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 혹은 환멸이 극도에 달한 지금이야말로 그 동안 한국정치의 민주화에서 주력해 온 최소정의적인 민주주의의 달성을 넘어, 실질적 민주주의란 무엇이며 어떻게 달성해야 하는가를 논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 입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국민 여러분들께서 뽑아 주셨습니다"라는 이야기 한 마디로 정리될 테니까.


3. 본래 한국에 "자신의 정치성향을 세련되게 표현하는" 신문이란 없으나, 최근의 조-중-동은 그 상식의 밑바닥마저 완전히 파괴하고 있다. 지면의 편집, 구성, 단어의 선택, 기사의 종류, 각 면 기사의 연계성에서 이 신문들은 너무 노골적이다. 하긴 이런 신문도 봐 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잘 나갈 것이다. 만일 우리나라 신문시장이 완전경쟁에 가깝다면. 그리고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

신문이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다만 진수성찬도 쓰레기통 속에 들어가 있으면 쓰레기이듯이, 같은 표현도 저급하고 지나치게 직관적으로 하는 모습은 정치적으로 반대편 성향을 지닌 입장에서 읽고 있으면 굉장히 안쓰럽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로 도배해 놓은 사랑 타령 유행가를 듣는 느낌이랄까.


4. "뉴라이트"라는 이름이 붙은 단체들의 현재 활약상을 보고 있으면 모순형용이 무엇인지 실로 뼈저리게 느낀다. 물론 "진보신당"도 모순이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뉴라이트 쪽이 조금 더 강한 독성을 지니고 있다. 깨끗한 보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틀을 살리겠다는 자들이 임시정부의 법통과 자유경쟁을 유도하는 시장개혁에는 사사건건 반대하고 있는 형국이니. 사실 이들은 뉴라이트도 아니고 올드라이트도 아니다. 그냥 Anything but North Commie일 뿐이다. 그리고 극단적인 생각끼리는 서로 매우 잘 통한다.


5. 개별 시민의 자유와 안전이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건(예컨대 강도, 강간, 폭행과 같은 범죄)이 아닌 이상, 모든 공권력을 포함한 물리적 강제력의 사용 빈도는 그 사회의 무정부성(anarchy) 내지는 정당한 권위의 결여도와 반비례한다. 우리는 흔히 국제정치를 무정부 상태라고 부른다. 그러나 국제정치가 100% 무정부 상태인 것은 아니다. 일차적으로 국제연합과 IAEA, EU와 같은 국제레짐 및 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내정치도 마찬가지다.

헌법에 입각한 질서정연한 사회구현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를 바탕으로 공권력에 대한 외경심이 들 정도의 강력한 국가권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국가권력이 그 어느 나라보다도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나라는 휴전선 바로 너머에 있다. 물론 그 나라에도 헌법은 존재한다. 정말 국가의 권위를 세우고 싶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반란집단 내지는 반국가단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나라라고 썼으니 잡혀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6. 다른 사람들이 잘 논하지 않는, 이 정권에 대한 오만 가지 불만 중 하나. 나는 이명박 행정부 하의 외교통상부가 1년 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지만(기획재정부를 보라). 그리고 한국외교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는 미국과 일본이 각각 정권말기의 레임-덕과 국내정치의 복잡한 사정 때문에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까닭도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외교 무브먼트, 구체적으로는 북핵의 실마리를 어떻게 풀어 나가느냐의 문제는 미국 오바마 정부가 정식으로 출범하면 조금씩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이 정부는 오직 "경제! 반드시 살리겠습니다! 살린다니까요! 걱정 마세요!"만을 반복적으로 외치며 탄생한 정부니까. 당연히 외교에 기본적인 전략 같은 것이 잡혀 있을 리가 없다. 원칙적인 입장을 매우 강조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원칙만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안 되면 선제공격이라도 하자고? 전쟁이 그리 좋은가?




그러니까, 이제는 정말로 10년 동안 조금씩 되살려 왔던 것들을 모두 싸그리 "잃어버린" 느낌이다.



by Lucid | 2009/01/04 04:05 | Junks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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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想翔 at 2009/01/04 12:04
1. 747 이라는 말도 안되는 공약을, 탐욕에 눈이 어두워 믿어 버리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교육정책도, 경제정책도, 환경 관련 정책들도.. 모두 탐욕스러워요.

3. 한겨레가 한때 상당히 노골적이어서, 보기 너무 불편해!! 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새 조중동은 노골적 노출 수위의 끝이 어디까지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정말 청소년 위해 음란물 수준이랄까요.

4. 그들은 그들이 혐오하는 빨갱이와 자신이 똑같다는 걸 말해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에휴.

쉬는 날이면 광화문, 종로, 명동에 나가길 좋아했는데.. 요즘은 답답해서 집에만 있게 되네요. 나갈 때마다 전경들이 쫙 깔려있고 온통 닭장차 투성이라 대략 정신이 멍해지더군요.
Commented by 용두 at 2009/01/08 14:34
사람들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기대한 것은 "성장" 이었죠.

그러나 성장의 패러다임이 구식인 점은 매우 안타깝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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