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밥 get. 나 자신도 포함되는 글이기에 오랜만에 생각을 남긴다.
1. 인터넷에서 떠도는 소위 "20대 개새끼론"에는 세 가지 가량의 의미가 들어 있다.
첫째, 20대(=99학번 이후)는 그 이전 세대에 비해 정치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보수적이다.
둘째, 20대는 IMF 이후 신자유주의적 광풍에 휩싸여 안정적인 직장을 추구하고 자신의 스펙을 올리는 데만 관심이 있다.
셋째, 20대의 생활은 소비 중심적이며(≒ 향락 위주) 문화 생활에서도 구미(歐美)풍의 chic함을 좇는다.
모두 일리있는 말들이다. 적어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다만 그 한계는 명확하다.
2. 미디어에서 묘사하는 전형적인 386세대의 모습은 민주주의의 쟁취를 위한 정치적 투쟁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총체적 인간이다. 권위주의 국가가 (절차적) 민주주의 국가로 이행하는 과정, 즉 민주화에서 이러한 정치적인 총체적 인간들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반면 그 이후 세대는 부분적 인간, 그러니까 자신의 생활을 영위하다가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기가 닥치거나 참여의 필요성이 커질 경우 정치적인 의사를 표현하고 실천에 옮기는 유형이다. 따라서 현재의 20대는 386세대, 그것도 민주화 투쟁의 중심에 섰던 그룹과 비교하면 당연히 어느 정도는 非정치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현재의 20대가 비정치를 넘어 탈정치적이거나 반정치적(정치에 혐오감을 느끼고 싫증을 내는)인 성향을 보이고 있는가이다. 조중동 등의 보수 언론에서 잊을 만 하면 크게 때리는 "20대, 보수로 간다" 같은 표제는 신경 쓸 가치도 없다. 그러나 이 문제는 실제 정치학계와 사회학계에서도 널리 연구되고 있으며 학자들마다 결론이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즉, 확실하지 않다. 확실하지 않은 것을 단정짓기는 어렵다.
물론 20대는 60대에 비해 확실히 투표율이 낮다. 그러나 그것을 20대의 탈정치화로 봐야 할지, 권위주의 정권의 과도한 정치적 동원의 대상이었던 60대의 특성으로 봐야 할지는 쉽지 않은 문제다.
3. 60, 70년대에도 비정규직은 있었고 쥐꼬리만한 돈을 받으며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있었다. 그러나 4년제 대학 졸업자 이상이 주로 취업하는 대상, 즉 사무 / 관리직 및 전문 직종의 비정규직 비율의 증가와 그에 대한 주목은 분명히 외환위기 이후에 시작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그 때나 지금이나 먹고 살기 어렵다. 그러나 현재의 대기업 평사원이나 대리들은 그들의 아버지 세대, 형님 세대에 비해 훨씬 높은 비율의 고용불안의 위험을 안고 있다. 따라서 취업 탐색 세대인 20대의 불확실성은 더욱 크다.
그러므로 20대에 대하여 지나치게 신자유주의적이라거나 이력서에 기재하기 위한 개인의 스펙을 높이는 데만 몰두하는 세대라는 평가는 세계의 변화에 따른 사회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켜 비판하는 오류이다. 소득과 관련된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많은 취업 탐색자들은 위험기피적인 선택을 한다. 그리고 고용의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자기계발(이라기보다는 기업에서 요구하는 사항에 대한 매진으로 봐야 하겟지만)에 집중한다. 이는 개개인의 잘못은 절대 아니다.
4. 해방 이후 어느 시대에나 구미의 문화에 대한 동경은 그 방식만 달랐을 뿐 존재했다. 50년대의 문리대 선배들은 <뉴요커>에 실린 새로운 영미소설을 읽기 위해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파지에 달려들었으며, 70년대의 청소년들은 비틀즈, 딥 퍼플, 롤링 스톤즈에 열광했다. "된장녀"로 천박하게 일컬어지는 현재 20대의 서구적인 chic함에 대한 추종은 그러한 동경의 현 시대적인 version이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현재의 20대는 청소년 시절부터 대중문화의 소비적인 특성에 강하게 노출되어 있는 세대이다. 메가박스와 CGV로 대표되는 멀티플렉스 영화관, 베니건스와 아웃백 같은 패밀리 레스토랑, 서구의 문화를 가장 빠르게 전파할 수 있는 매체인 케이블 TV와 인터넷, 스타크래프트 열풍과 아이돌 그룹싱어들에 대한 열광은 모두 현재의 20대가 10대일 때 한국에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70년대의 청소년들이 통기타를 치면서 팝송을 불렀고 60년대의 감수성 예민했던 청소년들이 외국문학을 읽었던 것처럼, 현재의 20대는 그러한 문화에 휩싸여 청소년 시절을 보냈고 현재도 이를 충분히 즐기고 있다.
두서 없이 생각만을 나열하는 글들이 으레 그렇듯이 이 글에도 주제나 명징한 주장은 없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다만 명확한 답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이야기하고 싶다. 사람들은 언제나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어떠한 명제에 대하여 정말 궁금하고 꼭 알고 싶다면, 굉장히 복잡하고도 합리적인 방법을 통해 최선의 답을 찾아봐야 한다. 그리고 그럴 형편이 안 되는(혹은 귀찮은) 사람들은 미디어를 통해 결론을 찾으려 한다. 거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마지막으로 사적인 이야기 한 토막.
내가 앞으로 갖길 희망하는 커리어와 직업군에서만 보면 확실히 현재는 80년대보다 좋지 않은 상황이다. 냉전 시대 제1세계를 비롯한 자본주의 국가에만 개방되었던 미국의 주요 대학들은 이제 중국, 인도, 러시아, 동유럽을 포함한 세계 모든 곳에서 뛰어난 대학원생들을 받고 있다. 세계화의 당연한 귀결. 같은 스펙을 가지고도 83학번과 03학번이 선택할 수 있는 미국 대학원의 숫자는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박사 학위자들이 주로 가지는 직업인 교수, 연구원 및 전문직종 역시 과거에 비해 그 증분이 줄어들고 있다. 예전에는 50개의 자리를 놓고 60명이 경쟁했다면, 지금은 똑같은 60명이 고작 10개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유학 지망자들의 학점은 그 때나 지금이나 평균에 비해 상당히 높다. 그러나 현재 젋은 교수 세대인 80년대 학번들은 그들이 학부 재학 시절에는 학점을 따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만큼 대학교육이 정상화되어 있지 않던 시절이었고 스펙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거의 모든 학생들이 눈에 불을 켜고 높은 학점을 받기 위해 달려들지는 않았기 때문에 조금은 여유가 있었다고들 하신다.
global한 차원에서 경쟁이 이루어지는 GRE, TOEFL 및 기타 요소들은 말할 나위가 없다. 정말 이 길로 먹고 살 궁리를 하기도 너무 어려운 것만 같다.
# by Lucid | 2009/02/05 09: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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