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생이며, 2003년에 대학생이 되었고, 군필 후 졸업을 준비하고 있는 전형적인 "88만원 세대"로서 한 마디.
386세대라는 별칭은 정확히 말하면 그 연령대의 세대 안에서도 특정한 그룹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즉, 그들은 80년대가 붙은 학번을 가진 대학생들이다. 그리고 대학의 수가 늘어난 현재의 대학생과 당시의 대학생이 가지는 사회적 지위의 차이를 고려하면 그들은 일종의 예비 엘리트 집단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들은 최소한 "80년대 학번을 가지지 못한" 동년배의 친구들보다는 더 많이 배웠고,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도 높았던 집단이다.
결과적으로 1960년대에 태어났고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에 30대였지만 "80년대 대학 학번을 가지지 못한" 이들은 386세대론에서 배제당한다. 또한 80년대 학번을 가졌더라도 고시공부를 한 사람, 적당히 대학의 (방종에 가까운) 자유를 즐기다 취업한 사람, 얌전히 공부에 몰두해서 대학원에 진학해 학자가 된 사람 등은 이 범주에 포함시킬 수 없다.
요컨대 386세대론은 별명 붙이기 좋아하는 언론과 "1960년대에 태어났고 1990년대 후반부터 사회의 주요 직위로 진출했으며 1980년대 학번으로 민주화를 위한 이념적, 실천적 투쟁에 앞장섰던 (소위 일류) 대학생 출신"이라는 그룹의 높은 내적 동질성이 함께 만들어낸 하나의 신화라고 할 수 있다. (386세대가 대통령 직선제와 평화적 정권교체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거리의 맨 앞에서 직접 이끌어냈다는 것을 신화라고 한 것은 아니다. 학생운동은 확실히 민주화의 주역이었다. 오해가 없길 바란다.)
88만원 세대는 이것보다는 조금 더 범주가 넓은 표현이다. 높은 청년실업률과 경쟁을 권하는 사회 속에서 높은 스펙 따기에 매달리며 아둥바둥 살아가고 있는 20대의 총칭이 88만원 세대니까. 그러나 이것도 이 세대의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은 아니다. 386세대론과 88만원 세대론은 좀 과격하게 말하자면 엘리트주의적인 말이다. "
대학에서 민주화 투쟁을 한 세대"와 "
대학씩이나 나왔는데도 월 88만원 받을 직장도 못 구해서 발광해야 하는 세대"에는 모두 대학이 들어간다. 따라서, 비록 386세대론보다는 덜하지만 88만원 세대 역시 특정 그룹을 배제하는 형태의 표현이다.
정말 경제적, 사회적으로 소외받으며 힘들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386세대가 20대일 때에도, 88만원 세대가 20대인 지금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오히려 386세대가 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할 당시 (386세대들이 소속된) 대학의
대학생들이 가졌던 독점적 지위 내지는 지대(rent)는 현재의 88만원 세대 대학생들보다 높았다. 쉽게 말해 "그래도 XX대학 나오면 어디 가서 굶어 죽지는 않는다"는 말은 그 시대에 훨씬 잘 통했던 셈이다. 그 결과로 대졸 신입사원들의 연봉은 사회 전체 초년생들의 평균 연봉보다 훨씬 높았고 소위 일류대학의 학생들은 (비록 그들이 민주화 투쟁에 전념했을지라도) 사회적으로는 예비 엘리트로 취급받았다. 조금 극단적이고 웃지 못할 사례이긴 하지만, 서울대학교 학생증으로 녹두 술집에서 외상을 질 수 있었다는 시절이니까.
물론 지금도 대학 졸업자들은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일정 수준의 지대를 가지고 있다. 대체로 입학 점수가 높은 대학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그 양은 과거에 비해 훨씬 줄어들었다. 비정규직은 사무 / 관리직에서도 이제는 일상적이다. 요즘 녹두에서 공짜로 술 먹고 서울대학교 학생증 내밀며 외상 달아 달라고 하면 모르긴 몰라도 아마 쫓겨날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제한된 시간으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해야 한다. 대학생이라는 사회적 지위가 제공하는 지대가 높았던 과거에 비해 오늘날의 대학생들(그리고 대학생이 아닌 청년들)은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준비에 몰두해야 한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사실 더 중요하고 주목해야 하는 점은 1980년대의 386세대와 1990년대의 신세대(X-세대), 2000년대의 88만원 세대가 흘러가는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이다. 전형적인 예로, 지난날 100분 토론에 출연했던
나경원, 제성호, 전원책, 유시민, 진중권은 모두 같은 대학교 출신이다. 군사독재 시절 이른바 "조국 근대화"에 앞장 섰던 엘리트,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펼쳐나갔던 엘리트, 그리고 미래의 엘리트가 될 준비를 하는 88만원 세대들의 엘리트는 이런 측면에서는 무서울 정도로 동질적(homogeneous)이다. 사회가 변하고 세상이 바뀌면서 그 동질성이 조금씩 약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마 완전히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다.
조지 오웰은 그의 소설 <동물농장>에서 당나귀 벤저민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뭐가 어떻게 되든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야." 386세대는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의 독재를 막았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데 가장 중요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다. 그러나 그런 386세대도 남들과 경쟁하고 이겨서 돈을 많이 벌어야 대접받는다는 자본주의의 속성, 좋은 대학에 가야 사람다운 사람 취급 받는다는 강박관념에 가까운 이데올로기, 우리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미시적인 폭력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386세대건 88만원 세대건 결국 이와 같은 근본적인 것들은 바꾸지 못했고, 또 앞으로도 한꺼번에 바꾸기란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만일 우리나라의 역사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한다면 결국에는 조금씩 해결할 수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