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풀이되는 포수 논쟁에 대하여

비슷한 듯 다른 고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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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서는 예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강민호 관련 이야기가 자꾸 나와서 다시 생각났다.

저 글을 썼을 때나 지금이나 내 기본적인 생각에는 변화가 없다. 즉,


1) 포수의 기량 혹은 멘탈적인 요인이 매우 중요하다면 멘탈까지 갈 것도 없이 매년마다 기록에 일관되게 뚜렷이 나타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것은 역시 팀에는 좋은 수비를 가진 포수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보다 훨씬 보수적인 생각이다.)

2) 기억은 기록보다 불완전하고 결정적인 순간만을 기억한다. SK가 벌떼 계투진을 앞세워 연전연승할 때 사람들은 입을 모아 박경완을 칭송했다. 그러나 바로 지난주 삼성과의 3연전에서 벌통에 벌이 없어서 심하게 털릴 때는 아무도 박경완의 리드를 문제삼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만수를 아주 형편없는 기량을 가진 포수로 기억하고 있지만 그의 포수수비에 관한 기록(도루저지율, 9회당 폭투/포일, 방어율)은 상당히 뛰어난 수준이었다.

3) 포수가 완벽한 리드를 한다 치더라도 그곳으로 볼을 100% 꽂아넣을 수 있는 투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A팀의 포수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가지기 시작하면 칭찬은 A에게 하고, 비난은 투수들이나 감독에게 하기 마련이다.

4) 전력분석팀과 코치를 비롯한 볼배합의 전문가들이 컴퓨터 기록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각 야수의 수비위치까지 일일이 지정해 주는 현대 프로야구에서 두뇌가 뛰어난 포수와 아무 생각이 없는 포수의 수비 기량 차이는 옛날에 비해 현격히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론은 그리 쉽게 발전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야구이론의 전문가들은 아직도 예전 생각을 훨씬 먼저 한다. 이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다시 참조.


Leonard Koppett가 그의 명저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했던 이야기의 바리에이션. Lou Boudreau가 Ted Williams Shift를 처음 고안했을 때 그는 당장 수비의 천재로 일컬어졌다. 그 시대에만 해도 수비 시프트란 Boudreau나 Ozzie Smith, 요즘으로 치면 Omar Vizquel 레벨의 명 수비수들이나 머릿속에 그려볼 만한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데이터 야구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그 정도 수준이 되는 선수라야 예측수비를 할 수 있었고, 시프트도 만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수비 시프트의 개념도 널리 퍼져 있고, 평균 정도 되는 야수들이라도 자료 분석에 의해, 혹은 벤치의 지시에 의해 타자마다 수비위치를 조금씩 바꾸거나 한다.

포수리드도 마찬가지다. 박경완이 1960년대에 그렇게 자세하고 수준높은 분석 레벨의 포수 수비를 펼쳤다면 그의 가치는 굉장히 높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구단이 데이터를 분석하고 미팅을 가지며, 배터리 코치가 포수들을 데리고 타자들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에 대해 의논한다. 한 타자에 대한 공략법은 그 타자가 약점을 극복하기 전까지 일정한 패턴으로 존재한다. 그 패턴을 어느 정도 익혀 놓기만 하면, 그리고 투수가 제대로 던진다면, 2004년의 Barry Bonds 같은 선수가 아닌 다음에야 그럭저럭 상대할 수 있다.



종합: 이상의 요인을 검토해 보면 뛰어난 투수리드 실력을 가진 포수가 그렇지 않은 포수에 비해 점하는 우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지 않을 확률이 높으며, 앞으로도 계속 줄어들 것이다. 물론 사람들의 생각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10년이 지나든 20년이 지나든 이 논쟁이 계속될 확률이 훨씬 더 높겠지만.



박경완이 위대한 이유는 포수 마스크를 쓰면서 OPS .849, 295개의 홈런, RC 957.9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849의 OPS는 3000타석 이상 타자 가운데 역대 2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지만
줄곧 포수 마스크를 쓰면서 그보다 좋은 OPS를 남긴 선수는 이만수(.907) 한 명뿐이다.



PS. 강민호의 블로킹 능력까지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그건 확실히 강민호의 결점이다. 다만 그 결점이 얼마나 크냐 작으냐가 문제라면, 그 역시 사람들의 생각보다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강민호의 현재 가장 큰 문제는 바닥으로 떨어진 공격력이다. 이것에 대해서도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식으로 포수수비와 연관을 지을 수도 있겠지만.


by Lucid | 2009/06/02 11:18 | Baseball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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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rumic71 at 2009/06/02 11:20
그러나 포수 한 명의 차이가 스윕을 불러왔던 두산-히어로즈전도 있었지요.
Commented by Lucid at 2009/06/02 11:32
그렇게 보실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고 봅니다. 절대적으로 누구 한 명 때문에 경기를 망치는 일은 야구에서는 존재할 수 없지요.
Commented by rumic71 at 2009/06/02 13:00
물론 이런 저런 요소가 복합되어 일어나지만 누구 한 명이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면 줄줄이 무너질 수 있는 게 야구니까요. 뭐 반대로 줄줄이 기가 살기도 하고. 그래서 멘탈스포츠 소리 듣는 거지 뭐 별다른 게 있는 게 아니죠. 히어로즈전에서는 용덕한이 저지른 일련의 도루저지 실패가 선수들을 뒤흔들어 놓은 것이 너무 확실했으니...
Commented by 스텔 at 2009/06/02 11:29
몇가지 논제를 들자면,

1. 투수가 제대로 던진다면

투수가 던질 수 있는 구종에는 한계가 있고,
어떠한 구종을 어떤 곳으로 정확하게 제구할 수 있는지도 다 다릅니다.
즉, 어떤 타자가 어떤 공에 약점을 보인다고
모든 투수가 다 그 공만 주구장창 던질 수가 없다는 말이죠.

2. 포수리드의 실제라... 흠

사실 포수리드는 '최선의 상황'보다 '최악의 상황'에서 더 차이가 난다고 봅니다.
한 경기에서 제구가 급격히 말리기 시작한 선발투수를 어떻게 더 끌고 가느냐 등의 문제.
제 글에도 그렇고 자꾸 SK의 5월 3일 경기 3회초를 언급을 하게 되는데
사실 그 S/B 수치와 제구력 상태를 가지고 카도쿠라가 1실점으로 이닝을 마무리한 게
결코 투수의 능력만은 아니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Commented by Lucid at 2009/06/02 11:37
1. 그 말씀이 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팀은 그 범위 안에서라도 최선의 조합을 시도합니다. 거기서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포수보다는 투수의 문제가 훨씬 더 크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2. 5월 30일 SK의 경기는 정확히 반대쪽 표본이죠. 영감님이 화가 나서 안타 하나씩 맞을 때마다 투수를 바꿨는데 결국 그 이닝에 투수가 네 명이나 바뀐. 그 때 허구연 위원의 말이 걸작이었습니다. "박경완 선수가 홈플레이트 뒤에 앉아 있는데 이런 결과가 나올 리는 없거든요."
Commented by 바른손 at 2009/06/02 12:50
저는 기록이란것에 기억이 지배당해서도 안되고, 반대로 기억이란것에 기록이 묻혀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전자는 기록원의 주관에 의해 기록되는 판단의 주관성과 , 그리고 야구가 가진 도구를 사용하고 정신적요소가 가미된 부분이 배제되기 쉽고
후자는 확증편향의 오류나, 선입견이 가져다주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신 이만수 부분은 적극동의를 하는 부분이고(말년의 인상이 수비가 약하단 인상을 주고, 또 공격력에 대한 반대급부적인 선입관도 있다 봅니다)

포수가 가지는 능력에 대해선 논의가 끊이지 않으리란 점도 동의합니다.그렇지만 수비의 안정감이나 투구시의 포수의 리드나 블러킹 포구가 가져다주는 차이는 여전히 존재한단쪽에 저는 한표를 던집니다.(물론 그 차이가 크지 않단 점에 동의합니다만, 그 차이의 대한 정의는 전 조금은 루시드님의 생각보단 있다고 본다고 하면 정확할듯 합니다)
Commented by noname at 2009/06/02 12:56
기록에 있어서 기록원의 주관이 개입되는 부분은 많지 않습니다. 대개는 상황에 따른 약속된 기록형식, 내지는 일정한 내용이 있구요. 그리고 기록원의 주관성이 관련된 부분은 수치로 나타난 스탯에 가시적인 영향을 줄 만큼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물론, 기록만을 맹신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긴 하겠으나, 분명한 건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최소한 가장 객관적인 확인 방법이라고 저는 봅니다.
Commented by Lucid at 2009/06/04 02:24
야구인들의 전통적인 생각old thinking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이 문제를 새롭게 보고자 하는 쪽에서도 결론이 나지 않은 문제라서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포수의 수비 중요도와 감독이 팀에 미치는 영향의 크기는 이 분야의 양대 떡밥이죠. -_-;

기록 부분에 대해서는...

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경기를 3차원의 축소형으로 그대로 옮겨서 묘사할 수가 없기 때문에(요새 금융파생상품 연구하듯이 야구의 play by play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합니다만) 어쩔 수 없이 다듬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구 기록법이 엄청나게 복잡하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재의 기록체계는 한계를 최대한 극복하려는 결과물이라는 것을 먼저 말슴드리고...

기록원의 주관 부분도 마찬가지로 기록지가 유지되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최대한 배제되어 있지만, 분명히 주관이 반영되는 기록 부분도 있습니다(에러라든지, 폭투/포일의 구분이라든지). 그리고 기록으로는 엄밀하게 정의되어 있지만 일반적인 케이스에서 이탈하는 경우의 수(아주 잘 맞은 공인데 야수 정면으로 간다든지, 탄도 자체는 형편없는 공인데 내외야 사이에 절묘하게 떨어진 행운의 안타가 나온다든지...)도 있죠.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딱 그만큼" 내지는 "거기서 약간 덜" 감안하고 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OPS .900인 타자와 OPS .800인 타자는 분명 차이가 있지만 OPS .900인 타자와 OPS .890인 타자는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요.

재미있는 것은... 제 전공분야가 사회과학인데, 사회과학이라는 학문 자체가(특히 정량적 연구나 수리적 모델링을 하는 분야에서) 야구경기 - 기록/통계 사이의 관계와 비슷한 양상을 보입니다. 학계에서도 비슷한 문제로 논쟁은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고요.

그런데 만일 원로 야구인이나 하일성 같은 해설가, 내지는 전통적인 견해를 지지하는 야구팬들의 관점으로 본다면 현대의 주류 사회과학도 그 한계가 너무나 큰 사이비 엉터리 과학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모델링, 내지는 근대 과학 자체가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근본적인 한계죠.

OPS나 RC 같은 상당히 보편적이면서도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통계가 별 의미 없다고 여겨진다면 그것보다도 훨씬 덜 합리적인 통계인 타율은 완벽히 배제되어야 마땅한데 또 현실은 그렇지가 않죠.

모르겠습니다. 제가 뭘 알고 이런 소리를 하나 싶네요. ^^;
Commented at 2009/06/0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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