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와 포수의 꾸준함에 대하여

종목을 불문하고 평균 이상의 성적을 내면서 꾸준히 경기에 출전하는 스포츠 선수는 매우 드뭅니다. 프로 스포츠 가운데 가장 많은 시즌경기를 치르는 야구의 경우는 이러한 경향이 훨씬 강한데, 그 중에서도 꾸준히 출전하기가 정말 어려운 포지션을 고르라면 투수와 포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몸은 계속해서 100개 가량의 공을 전신을 사용해 던지는 일이나, 3시간 이상 10kg의 장비를 몸에 두른 채 야외에 쭈그려앉아 공을 받는 일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26경기 제도 하에서 경기당 6이닝을 던지는 선발투수가 있다면 시즌 종료 후 그의 투구이닝은 약 150이닝 정도로 가정할 수 있습니다(25경기 선발출장, 경기당 6이닝) 평균 이상으로 많이 던지는 날도 있고 소위 털리는 날도 있음을 감안할 때, 훌륭한 선발투수라면 160이닝 가량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5년 연속으로 160이닝 이상을 소화하는 것은 뛰어난 선수 기준이라면 별로 어렵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보통 올해 잘 한 선수는 내년에도 잘 할 것으로 생각하고, 어릴 때부터 많은 공을 던진 투수들이 20대 후반에도 비슷한 개수의 공을 던질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원년부터 2008년까지 5년 연속으로 16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는 7명에 불과합니다(김시진, 리오스, 선동열, 정민태, 정삼흠, 최동원, 한용덕). 여기에 1987년부터 1989년까지 매년 160이닝 이상 던지고 한 해 쉰 다음(쉬었다는 것이 143 2/3이닝이긴 하지만) 1991년부터 1993년까지 다시 160이닝 이상을 던진 윤학길을 더한다 해도 8명입니다.


물론 이들 중 선동열, 정삼흠, 한용덕은 6년 연속으로 160이닝 이상을 던졌고, 정민태는 1995년부터 2000년까지 매년 160이닝 이상을 던지고 일본에 진출했다가 2003년에 복귀해서 두 해 더 160이닝 이상을 던졌습니다(연속기록은 유지되기 때문에 그는 8년 연속으로 160이닝 이상을 던진 셈입니다).


그러나 이들도 많은 투구의 후유증을 겪었습니다. 김시진과 최동원에게는 너무 이른 기량의 쇠퇴가 찾아왔고, 정민태는 일본에서 한 차례 부진을 겪은 후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2005년 수술하면서 사실상 은퇴수순을 밟습니다. 리오스는 다들 잘 아시는 대로입니다. 많이 던진 이후에도 꾸준한 커리어를 유지한 선수는 선동열, 윤학길, 정삼흠, 한용덕 정도이며 선동열과 한용덕은 부상을 경험한 후 보직을 변경해야 했습니다. 결국 윤학길과 정삼흠만이 "일반적인" 기량변화의 곡선을 그리면서 꾸준히 잘 던진 선수에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현역 선수들로 눈을 돌리면 이와 가장 가까운 기록을 가진 선수는 손민한입니다. 손민한은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2005년부터 2008년까지 꾸준히 160이닝 이상을 던지면서 팀의 에이스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의 손민한은 160이닝을 넘기기 어려워 보입니다. 젊은 선수들 중에서는 류현진과 장원삼이 나란히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매년 160이닝 이상을 던졌습니다만 올해 그들의 기량은 다소 하락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포스트시즌, 아시안게임, 올림픽,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을 경험한 선수들입니다. 사실 전망이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포수는 이런 경향이 더 심합니다. 흔히 뛰어난 포수라면 2년이나 3년은 물론이고 한 5~6년 연속으로 규정타석을 채우는 것은 별 문제가 없다고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원년부터 지금까지 4년 연속으로 규정타석을 넘긴 포수는 단 3명뿐입니다: 박경완(1998~2001), 이만수(1982~1985, 1987~1991), 진갑용(2002~2007).


장채근, 홍성흔, 김상훈, 조인성 등은 4년 연속으로 규정타석을 넘긴 적이 없습니다. 이만수는 선수생활 말년에 다소 아쉬운 노쇠화의 길을 밟았습니다. 박경완과 진갑용은 현재 1군에 없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올해 이 기록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던 강민호(2006~2008 규정타석)의 최근 부진과 부상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결국 최근 3~4년 동안 꾸준히 좋은 성적을 보인 투수나 포수가 올해도 그와 비슷한 성적을 거두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한 마디로 잘못입니다(선동열이나 이만수급의 선수라면 기량이 다소 퇴조해도 평균적인 선수보다는 당연히 훌륭한 성적을 내겠습니다만). 부상은 생각보다 쉽게 찾아오고, 또 아무 이상이 없이 잘 던지던 선수라도 꾸준히 몇 년 던지다 보면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이유가 없는데도" 뭔가 이상한 기록을 내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2군 선수들의 꾸준한 육성과 수급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by Lucid | 2009/06/28 16:34 | Baseball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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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호앵 at 2009/06/28 20:49
Lucid 님의 글은 언제나 생각할 거리를 주거나,
무의식적으로 "그렇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짚어주셔서 좋아요 ^^
Commented by Lucid at 2009/06/30 01:19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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