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과 프런트, 2군 시스템


프로야구 감독의 성향은 단기간에는 물론이고 일생 전체를 놓고 봐도 거의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김성근은 벌떼야구를 펼치고, 김재박은 작전수행능력을 중요시하고, 선동열은 불펜 승리조의 역할을 강조한다. 물론 이런 감독들도 때로는 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김성근이나 Bobby Cox 정도의 레벨이 되고, 획기적인 계기가 있을 때 그나마 어느 정도의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감독의 소위 스타일이 어떠한 요인을 계기로 결정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생각만 날 뿐 딱히 이것이라고 생각나는 것은 없다: 선수시절 모시던 감독의 영향, 선수시절 자신의 포지션, 플레이의 중점, 기량, 주로 뛰었던 팀의 스타일, 처음 감독을 맡았던 팀의 특성 등등. 이 스타일이 한번 방향 잡히면 여러 팀을 옮겨 다니더라도 구사하는 전략의 핵심은 비슷하다. 결국 감독의 스타일은 잘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모든 감독들이 피해갈 수 없는 지상 최대의 명제가 있으니 그것은 "못하면 잘린다."이다(미국처럼 은퇴 선수들의 직장 구할 데가 많지 않고 훨씬 부침이 심한 한국에서 이는 더 강하게 작용한다). 그럼 잘하면 되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게 또 생각만큼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왜냐하면 야구는 결국 선수들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머저리들만 데리고 있으면 진다. 웬만큼 성격 원만한 스타플레이어들을 데리고 있으면 당연히 이긴다. 백골프 시절의 백인천이나 감독생활 말기의 이순철 같은 경우가 아니고서야 이는 명백하다. 차라리 선수 시절처럼 내가 몸으로 뛰어서 어떻게라도 할 수 있으면 속이나 안 답답하지.


여하튼 못해서 잘리면 안 되기 때문에 모든 감독들은 필연적으로 한 해 한 해의 승부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이는 한국과 미국을 막론하고 모두 마찬가지다. Bobby Cox처럼 한 십몇년 계속 우승만 하거나, 나가시마 시게오처럼 아주아주아주 절대적인 입지를 차지했던 감독도 물론 있지만 이는 극히 드문 경우다. 팀의 실력이나 선수층의 깊이에 따라 특정 부문에서 조금 더 여유있는 운영을 하거나(조범현), 다른 감독들과 약간 행보의 방향을 달리하는 경우는 있지만(김경문) 이런 감독들도 아마 긴박한 처지에 몰리면 모두 똑같은 운영을 한다.


일단 올해부터 잘 넘기고 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감독의 최대 목표다. 그리고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프런트와 스카우트, 2군의 선수 육성체계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잘 나가는 팀들은 여기에 관한 한 매우 강하다. 흔히들 한국야구에서 프런트가 현장에 간섭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지만, 정말로 그랬다간 대폭발 후 망가지는 선수들을 지금보다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다.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프런트와 스카우트의 독자성은 분명히 존재해야 한다.


결국 구단(프런트)과 감독은 어떤 면에서는 본인-대리인의 관계이기 때문에 대리인의 활동을 본인이 적절하게 컨트롤하는 인센티브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 기반이 되는 것이 구단 조직의 능력일 것이다. 만일 감독의 "올해는 반드시 우승이다!"(그런 전력도 아니면서)에 구단이 덩달아 춤을 추게 되면, 우승 조급증에 걸렸던 시절의 삼성이나 최근의 LG와 같은 꼴이 반드시 난다. 이상적인 구단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매년 향후 3~4년의 성적을 최소 3위권 이내에 항상 올려놓는 것을 목표로 일련의 활동을 펼쳐야 한다. 트레이드나 외국인 선수 수급도 마찬가지다.


이것에 심각한 문제점이 생겨날 때 그 뒤에 반드시 찾아오는 현상이 선수수급의 동맥경화 현상이다. 즉시전력감이나 베테랑 선수에 대한 도가 지나친 집착 + 투수와 포수의 혹사에 가까운 기용은 필연적으로 2군 시스템과 선수들의 의욕을 약화시킨다. 여기에다가 만일 그 해에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을 경우에는 시간을 서서히 들여서 키워야 할(2~3년) 유망주의 무리한 콜업이 수반된다. 이와 관련하여 정의윤(상무), 이성열(두산), 박병호, 박경수가 왜 아직까지 기대했던 만큼의 포텐셜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가는 분명히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결론: 한화삼성 프런트는 현장에 대한 직접적인 간섭(세대교체, 외국인 선수 선발 등)을 더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LG 프런트는 감독의 섣부른 경질보다는 시스템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8개구단 프런트 공히 학연이나 지연 같은 되도 않는 연줄에 의한 파벌 형성이나, 택도 없는 무브먼트(세데뇨, 니코스키!)를 보이는 정신줄 놓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




뭐 그런 프런트가 없고 그런 2군 시스템을 갖춰 놓은 팀이 별로 없긴 하다. 만일 모든 팀의 프런트와 2군 시스템이 다 이 수준이었으면 꼴찌할 팀은 하나도 없다.

by Lucid | 2009/06/30 03:41 | Baseball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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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스텔 at 2009/06/30 09:42
루시드님 글은 늘 잘 보고 있습니다. ^^

김인식이나 선동렬이 욕먹는 이유는,
미래를 아예 보지 않는 운영을 하는 것이 가장 크다고 봅니다.
(사실 같은 삼빠로서... 내년의 투수진은 참 걱정거리라 -_-)

뭐 사실 감독과 프런트 간의 상호 간섭도
물론 반작용이 있을 수 있겠지만,
최소한 감독이 팀을 말아먹는 페이스면
프런트가 간섭하는 게 당연하다고 봅니다. 하하하하 =_=;;

공감되는 글 잘 읽고 가요 =)
Commented by Lucid at 2009/07/01 23:06
우야튼 선동열은 야수조에서는 그나마 최근에 선수들을 하나 둘 시험해 보고는 있으니, 김인식보다는 낫다고 봅니다. 포텐셜만 보면 한화의 신예들이 히어로즈보다 좋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현실은 반대로 흘러가고 있죠.

투수진 운영은... 포기했습니다. 선발투수가 한 두세점 내주면 1회에도 투수 막 바꾸고, 계투가 못미더우면 7회에도 노장진 임창용 올리던 김응용 시절보다는 훨씬 나은 것이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최근 김재박 감독의 투수운용(특히 정찬헌)이 좀 염려스럽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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