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라이온즈 단상

분위기가 자못 험악해서 트랙백이나 그런 건 못 걸겠고, 글도 짧게.


작금의 투수진 황폐화는 분명 선동열의 큰 과오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심광호 박정환 5번 지명타자 따위의 기용을 더욱 혐오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중요도가 다르니. 어쨌든 권오준, 정현욱, 권혁에게 본격적인 선발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은 심히 유감이다. 적어도 권오준은 선발투수로 시험해 봐야 했다. 이에 더하여 선은 확실한 오늘의 1승을 "약간" 불확실한 미래의 5승보다는 조금 더 강조하는 타입으로 보이는데, 장기간 상위권을 유지해야 하는 팀 메이킹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것도 불만스럽다. 즉, 선발투수로 전환 시 위 투수들이 겪게 될 약간의 어려움 + 팀 성적의 불확실함 + 기타 등등의 요소를 생각보다 크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재미있는 것은 박한이가 부진하자 땜빵용으로 올라와 어느덧 1번 타자까지 계급상승(?)을 이루어낸 이영욱의 기용법이다. 준족의 좌타자라는 장점이 있지만, 선동열은 이영욱을 처음으로 기용할 때는 그리 많은 믿음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영욱이 뭔가를 보여 주자, 선동열은 이후에도 클러치 상황에서 계속 이영욱을 내보내고 다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밀어 주었다(이영욱이 너무 부담스럽겠다 싶을 정도로). 이영욱은 그 기회를 대체로 잘 잡았고, 이제 당분간 이영욱이 다시 2군으로 내려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사실 이런 기용이야말로 신인을 레귤러로 만드는 정석이다. 실패할 확률도 충분히 있지만(몸에 맞는 공을 휘둘러 삼진당하면서 그대로 경기가 끝난 KIA전이 대표적인 예), 뭔가 보여 준 놈은 일단 계속 믿고 맡기는 것. 거기서 본인이 기회를 잡으면 살아남고 바보짓을 하면 밀려난다. 채태인, 박석민, 최형우, 그리고 아직 보여 준 것은 없지만 올 시즌 김상수는 모두 이런 기용의 수혜자들이다. 그런데 선동열은 이런 식의 기용을 불펜투수의 선발 전환 도전에는 시도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그 자신이 일가견이 있는 분야에서는 "확실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좋게 말하면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는 스타일이고, 나쁘게 말하면 소심한 것이다. 이 점은 LG의 김재박 감독과 매우 비슷하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사태가 100% 선동열의 불펜 혹사기용이라든가 능력 부족인가 하면 또 그것도 아니다. 그것은 최소한 다음과 같은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다.


1) 외국인 투수의 실패: 바르가스, 하리칼라, 브라운, 메존은 지금의 윤성환과 크게 다르지 않거나 더 못한 투수들이었다. 오버뮬러와 션은 말할 가치조차 없다. 제구가 완전 제 멋대로였던 바르가스를 제외하면, 올해의 크루세타가 그나마 최근의 삼성 외국인 투수들 가운데 스터프형에 가장 가깝다.

2) 팜의 황폐화와 2차지명의 실패: 최근 몇 년간 A급 고졸투수들은 모두 서울, 경기, 광주 출신이었다. 낮지 않은 순위 때문에 드래프트에서 받게 되는 불이익도 가중됐다. 오승환 픽은 지금 생각하면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고, 이후에도 투수 드래프트는 예상도, 평가도, 현재도 모두 신통치 않다. 그나마 지명 당시 많은 기대를 모았던 군산상고의 차우찬이 가장 좋은 결과를 내고 있는 걸 생각하면 별로 말하고 싶지도 않은 주제.



결론을 내자면. 선동열 감독의 책임이 분명 큰 부분이긴 하지만 또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소리. 지나친 극단론은 진실에는 가깝지 않다. 너무 싱거운 결론 아니냐, 그래서 뭐가 어떻단 거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가장 잘 던지는 투수들을 모두 불펜에 넣는 야구를 오래 보고 싶지는 않기에 재계약을 반대했지만 이미 결론이 난 이상 "적절한 수위"를 지켜 주길 바랄 뿐이다. 작년 정현욱이나 올해 권혁같은 기용만 하지 않는다면 심한 반발심은 없다.


오히려 나의 관심은 최원제, 김상수, 조현근, 백정현, 박성훈이 앞으로 어디까지 갈 것이냐에 달려 있...(-_-;)



by Lucid | 2009/07/25 04:08 | Baseball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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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바른손 at 2009/07/25 09:03
결론부분에 동의합니다.저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타선쪽은 저도 매해 종종 나오는 기이한 기용(대타 심광호,박정환) 작년초에 허승민 중용(허승민은 근데 약간 또 이해는 됩니다)등의 식을 제외하면 만족하는 편이고, 투수진운용에 대해서도 선동렬과오가 크지만 죽도록 깔만큼은 또 아니네요.

저도 재계약 내심 반대했지만 이미 확정된거라면 수위조절이 되었으면 제발 좋겠습니다.
Commented by Lucid at 2009/07/25 14:41
타자 기용은 선동열 감독보다는 김응용 사장 스타일이 기존 삼성팬들하고는 더 맞았죠. 최형우의 재입단도 김응용의 영향이 컸다는 말이 있으니...
Commented by 빌리밥 at 2009/07/25 09:45
제가 볼때는 그런 우연적이고 어쩔 수 없었던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선동렬 감독 자체의 마인드에서 문제가 크다고 봅니다. 잘 던지고 있던 선발 투수를 6이닝 만에 내린다던가 하는 모습은 지난 날 마무리가 3이닝을 책임지는 시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보이니까요. 선발 자체를 못 믿어서 선발에게 이닝을 별로 안맡기는 듯 보인다고 할까요.

외국인 이야기 하셨는데, 올해 대박났다는 크루세타도 자책점이 3.74임에도 19게임에 고작 98과 2/3이닝을 던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선발 한번당 5이닝 정도만 던지고 내려왔단 이야기죠. 투구수는 1709개이구요. 반면 장원준을 보면 자책점이 4.43이지만 19게임에 113과 2/3이닝을 던졌습니다. 그래도 거의 6이닝씩 막아줬단 이야기죠. 투구수가 각각 이닝당 17개, 16개인데.. 크루세타의 경우 17개 X 5 = 85개, 장원준의 경우 16X6 = 96개. 이 차이는 시즌이 진행될 수록 커집니다. 올해 보스턴이 하락세인 이유도 선발이 충분히 이닝을 먹어주지 않은 탓에 불펜에 과부하가 걸려 후반 역전을 많이 당한 탓인데, 85개만 던지게 하고 내리다니요. 하하. 그냥 웃음만 나올 뿐입니다. 특히 일이년도 아니고 이런 식의 운영을 재임 기간 내내 써먹었다면 불펜 문제는 다른 선수들의 병풍 사건 같은 것을 대지 않더라도 결국 선수 돌려막기를 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다만 그 돌려막는 투수들이 좋으냐 나쁘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선발의 미덕이 자책점이나 승 보다는 이닝을 얼마나 잘 먹느냐에 달렸느냐는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Commented by Lucid at 2009/07/25 14:53
김응용 강병철 시대까지 올라가서 비교하는 것은 조금 어렵고(1회에 선발이 볼넷 2개 주면 바로 내리던 사람이 김응용이었죠), 선발 자체를 못 믿어서 이닝을 별로 맡기지 않았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감독 부임 초기에 배영수를 제외한 다른 모든 선발들이 그런 타입이었다는 것이 한 원인이었고 그것이 그대로 루틴으로 굳어졌죠.

크루세타의 경우에는 조금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잘 아시다시피 크루세타는 삼진을 그럭저럭 많이 잡는 투수입니다만 볼넷도 무진장 많이 나오는 타입입니다. 이런 스타일은 소화이닝에 비해 투구개수가 많은 편입니다.

실제로 6월 이후의 기록을 보면 크루세타의 경기당 투구개수는 96, 96, 100, 95, 110, 114, 66(6이닝 강우콜드 완봉), 94, 98개인데 이 중 7이닝을 넘긴 경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닝당 투구개수가 너무 많죠. 결국 투구개수만 놓고 보면 예전 리오스 수준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딱히 적다고 보기에도 어렵습니다.

다만 적당한 커리어에 도달한 외국인 선수임을 감안하면 조금 더 던졌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군요. 차우찬을 95개, 윤성환을 100개 정도에서 끊어 줄 필요가 있다면 크루세타는 105~110개 정도까지도 상황에 따라 계속 밀어붙여야 한다고 봅니다. 바로 지난 목동경기 같은 경우죠.

물론 2007년의 브라운 같은 기용은 비판의 여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쉽게 이기기 위해 불펜에 부하를 주는 방식을 택했으니 말이죠.
Commented by NoLife at 2009/07/25 12:54
90년대부터 삼성을 꾸준히 응원해온 제겐 무척 공감가는 글입니다.

90년대까지는 그나마 쓸만한 유망주들이 매년 경기장에 얼굴을 비췄지만 2000년대 들어선 지역 연고에서 쓸만한 선수(특히 투수)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올해는 불펜 투수들의 기량차가 너무 커져버린데다 오승환의 이탈로 정현욱, 권혁 두 선수의 부담이 엄청나게 커지게 되었죠...

내년에 돌아올 선수들을 생각하면 조금은 희망적이긴 한데 그럼 지금 불펜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들은 어찌 되는 걸까요(...)
Commented by Lucid at 2009/07/25 14:58
지역 연고에서 마지막으로 나타난 탑 유망주는 권혁이 사실상 마지막이죠.

사실 본문에 쓰지 않았지만 선동열 감독 최고의 패착은 2006년 후반부~한국시리즈의 배영수 투입 강행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때를 기점으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보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스텔 at 2009/07/25 20:26
그런데 어쨌든 선발을 '안 키웠다는' 비판에는 여지가 없다고 봅니다.
최소한 시도라도 해보고 '얘 안되겠네'라고 하는 것과
그냥 시도도 해보지 않고 이상목 조진호로 땜빵하는 건 분명히 다른 거니까요.
Commented by Lucid at 2009/07/26 04:21
이상목 조진호 건은 확실히 2008년 시즌을 시작하면서 감독이 너무 낙관적으로 혹은 관성적으로 끌고 간 면이 있습니다. 사실 둘 다 불펜으로 쳐도 승리조는커녕 관망조에 들어가기도 어려운 구위였죠.

선동열 비판론에 무작정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
Commented at 2009/07/25 21:2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Lucid at 2009/07/26 04:39
저도 모르게 링크공개가 비공개로 처리되어 있더군요. 이제 풀었습니다. 보이시나요? :)

마운드 운영에 융통성이 없다기보다는 몸을 사리고 확실히 오늘의 승리를 챙기려는 선택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불펜자원이 많고 팀 타력이 강하다면 해 볼 만한 선택이긴 합니다만, 1~2명의 구원투수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장기적으로 볼 때 득보다는 실이 많은 전법입니다. 많은 분들이 반대하시는 것도 그것 때문이죠.

2006년에 권오준과 오승환만으로 우승을 일궈내긴 했습니다만 그 둘은 매우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2000년 이후 역대 불펜 원투펀치를 꼽으라면 단연 1순위니까요.

정리하자면 욕 먹을 일인 것은 맞습니다. 특히 권오준과 배영수의 부상은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다른 투수들의 경우는 "판단 유보". 그리고 현재 운영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죠. 거기에다가 더해서 제가 지적한 것은 상황의 영향도 어느 정도 있다, 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비공개로 댓글을 다시는 것에 대해 죄송해하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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