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현과 MVP에 대한 생각

한 선수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시즌이 끝나봐야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단편적인 생각만 제시.



1. "어떤 선수가 MVP를 받을 것 같다"와 "어떤 선수가 MVP를 받아야 한다"는 다른 가치판단이다. 전자는 기자단의 투표행태와 그간 MVP를 받은 선수들이 어떤 특징이 있었는가를 판단하는 반면, 후자는 한 명의 팬으로서 어떤 선수가 MVP에 가장 적합한가를 판단하는 과정이다. 가끔 MVP에 대한 글을 보다 보면 이 두 가지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고 쓰거나, 지나치게 전자에 집착하는 경우가 있는데 둘 다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기자단이 투표로 MVP 주는 거면, 잡담은 뭐하러 하나.


2. 그런 의미에서 "어떤 선수가 MVP를 받을 것 같냐"고 물어본다면 현재로서는 김상현 95%.


3. 그러나 "어떤 선수가 MVP를 받아야 하는가"라고 나에게 물어본다면, 그 답은 김상현이 아닐 확률이 현재로서는 높다. 나에게 가장 가치있는 선수 = 팀의 승리에 가장 많은 공헌을 한 선수이고, 그 가운데 다시 상당 부분은 수치로서 객관화 혹은 조정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상현은 올해의 모든 선수들 가운데 팀의 승리에 가장 많은 공헌을 한 선수인가? 아직까지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4. KIA 1위의 가장 결정적인 공헌을 한 선수를 너무 폄하하는 것 아니냐? 임팩트가 그렇게 큰데 무슨 반론이 나올 수 있냐? 홈런 1위 타점 1위인 선수를 그렇게 평가하다니 니 눈은 삐꾸가 아니냐? 라고 대꾸할 수도 있겠다. 반론은 다음과 같다.

1) MVP는 임팩트로 받는 것이 아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임팩트는 대부분 매우 주관적이며 단편적이고, 최근의 활약상에 의지하는 경우가 크다.

2) 홈런 1위는 확실히 좋은 기록이며 타자로서 가장 높은 팀 공헌도를 기록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홈런만이 타자의 공헌도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타점의 경우는 더한데, 예를 들어 김상현이 4타점을 올렸다고 해서 KIA의 팀 득점 가운데 정확히 4점이 김상현의 덕인 것은 아니다. (투수의 승리도 마찬가지다. 20승 투수가 10승 투수보다 10승만큼의 가치가 더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본적인 오류이다.)

3) 올 시즌 김상현(김상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이 혼자 올렸다고 여겨지는 많은 팀 공헌도의 대부분은 쪼개 보면 실제 그 정도는 안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타점은 타자의 공헌도 내지는 업적을 평가하는 데 가장 불완전하고 조악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윤석민, 구톰슨, 로페즈, 최희섭, 유동훈이 없었더라면 김상현이 지금처럼 빛날 수 있었을까?

4) 1983년 장명부 같은 예외적인(비정상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선수 한 명 덕분에 꼴찌할 팀이 4강에 가고, 4강권 다툼을 할 팀이 1위를 하는 경우는 현대야구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 3번과 동어반복이지만, 한 선수 덕택이라고 여겨지는 공헌 중에는 실제로 많은 부분이 팀 동료의 퍼포먼스에 의존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것도 문제다.)

5) 김상현의 올 시즌 활약과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확실히 매력적이지만, 그 때문에 김동주나 김현수가 양준혁化되는 것(= 소위 "임팩트"가 줄어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5. 너 삼성팬이라 이러는 거지? 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생각하는 1997년과 2001년, 2003년의 MVP는 이승엽이 아니라 이종범, 호세, 심정수라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다. 이승엽은 그 "임팩트"가 지나쳤다.


6. "페타지니나 박용택이 7위 팀 선수라서 기자단의 투표에 불리할 것이다"는 옳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페타지니나 박용택은 7위 팀 선수인데 어떻게 MVP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한다면... 4번을 다시 읽어 주시기 바란다. 김동주나 김현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7. 이상의 논리가 "김상현은 MVP를 받을 자격이 없다"가 아님을 마지막으로 강조하고자 한다. 우연찮게 혹은 의도적으로(?) 오독하는 경우가 있는데, "김상현은 MVP를 받을 자격이 없다"와 "김상현보다 MVP에 더 적합한 선수가 있다"는 전혀 다른 논리이다.


8. 사실 3루수 골든글러브도 현재까지는 김동주와 김상현의 50 대 50 구도이다. 남은 시즌 누가 더 좋은 성적을 올리느냐에 따라 충분히 김동주가 탈 수도, 김상현이 탈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기자단은" 그때나 지금이나 김상현을 염두에 두고 있겠지만.

by Lucid | 2009/08/29 15:49 | Baseball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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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피티라메 at 2009/08/29 15:55
뭐 우리나라기자들이 그리 개념인들이 아니라서요--;
Commented by Lucid at 2009/08/29 15:56
그거야 이미 진작에 포기했습니다. 그거 생각하면 이런 글도 저런 글도 다 부질없;;
Commented by Kain君 at 2009/08/29 16:04
그러나 과연 기자님들은?? [...]
Commented by 바른손 at 2009/08/29 17:03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Lucid님 글은 언제나 차분하게 관점을 제시해주셔서 좋습니다.
참 공감하는 부분입니다.이런 부분으로 인해 실제로 객관적인 다수가 생각하는 것관 다른 MVP결과도 있어왔던것 같습니다.
누가 탈것 같단 것과 합당한 이유로 다른 선수도 MVP에 거론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죠.
좋은 논의점이라 생각합니다.어떤 지표로 선수를 평가한다는 것도 종국엔 주관적인 부분에 함몰되는 경향도 있고(어떤 지표를 중요시 하느냐의 주관적 차이가 오겠죠)...
어려운 부분인듯 합니다.

하지만 역시 기자단투표란 이유로 인해 대세는 김상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몽몽이 at 2009/08/30 11:25
전 김상현이 되는거 반대합니다.
김상현이나 타이거스가 싫어서는 아니고, 이대호와의 형평이 너무 안 맞는거죠.
대삼관 위업의 이대호가 밀렸는데 김상현이 MVP... 이대호 잠이 오겠습니까? 아호.
전 롯데와 연고도 없지만... (실은 갠적으로 안 좋아하는 넘이 롯빠라 좀 싫음)
대삼관이 아무때나 나오는 것이 아니거늘 너무했단 생각이 듭니다.
이래놓고 김상현이 MVP라면 ㅎㅎㅎㅎㅎ
Commented by young026 at 2009/09/03 17:25
이상한 얘기로군요. 이대호가 트리플크라운을 하고도 MVP를 못 받은 것과 김상현이 MVP가 되는 건 전혀 관계없는 얘기입니다. 이대호가 김상현이 MVP가 되면 잠이 안 오고 김동주나 김현수가 MVP가 되면 잠이 잘 올 이유도 없고.
Commented by 정훈군 at 2009/09/01 01:39
글에 동감합니다. 딱히 그 말밖에 없네요. 근데 아무래도 김상현이 유력할듯.
Commented by 風林火山 at 2009/09/01 22:50
일단 누적스탯에서 딸리는 김동주는 열외되어도 할 말 없다고 봅니다. 김상현이 볼넷이 적고 삼진이 많은 타자라 득점기여도에서는 떨어지지만 조정 ops나 승리기여도는 오히려 김상현이 낫죠. 아니 나았었죠라고 해야 하나요 ㅎㅎ
Commented by young026 at 2009/09/03 17:28
현재 상황에서 제일 큰 문제는, 김현수는 MVP투표에 참여할 기회 자체도 못 얻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입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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