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의 범죄를 저지른 연쇄살인범, 내지는 강간범이 붙잡혔다고 하자. 그의 죄는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처벌되며, 이 때 판사는 기존 성문법, 유사 판례, 기타 논리적인(주관적일 수도 있는) 근거를 덧붙여 형량을 결정하게 된다. 지금 이야기해 보려는 것은 이런 법리적인 설명이 아닌, 초급의 미시경제이론에 입각한 naive한 생각이다. 결코 범죄자를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님을 미리 밝힌다.
이번 사건과 같이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일을 저지르는 인간말종의 기사를 접하는 사람들의 반응 중 종종 찾아볼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이렇다: "저런 밥벌레를 내 세금으로 감옥에서 먹여 살리다니, 사형시켜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그 "밥벌레"를 선량한 시민의 세금으로 감옥에서 멱여 살리는 것과, 사형으로 응징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아주 간단히 생각하면 다음과 같다: 밥벌레가 세금을 통해 감옥에서 먹고 사는 것은, 일견 "밥벌레님"은 편한 교화시설에서 속 편하게 간단한 잡일이나 하고 앉아있고, 착한 다수의 시민들이 그를 먹이기 위해 자기가 뼈빠지게 번 돈을 갖다바치는 장면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이런 표현은 적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시민들이 내는 세금 중 이런 목적으로 쓰이는 세금은 보다 안전한 사회를 위한 시민들의 "비용 지불"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자면 이렇다. 그럼 그 세금이 아깝다고 후안무치한 짐승만도 못한 놈을 사회에 계속 놓아둘 것인가? 그걸 찬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경찰서와 교도소에 들어가는 예산은
"높은 치안수준"이라는 서비스를 구매하기 위한 일종의 가격이다. 국가는 개인의 신체와 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지만, 그렇다고 자선단체도 아니다. 시민은 국가로부터 서비스를 제공받으면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밥벌레나 다름없는 강력범을 교도소에 가두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쯤에서 이런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럼 죽여 버리면 되지 않는가?" 맞는 말이다. 악질적인 범죄자의 생명을 박탈하는 데 드는 비용은 그 범죄자의 목숨을 붙여 두면서 교도소에서 살아가게 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분명히 적다. 게다가 사형은 악질범을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키는 효과를 발휘하는 반면, 그냥 가둬 놓고 있으면 언젠가 탈옥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런 종류의 사건에서는 해당 범죄자를 제외한 다른 사회 구성원들의 입장에서는 사형 판결만큼 이상적인(?) 구형도 없다. 게다가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 본 비용도 언뜻 보면 크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튼튼한 교수대, 혹은 잘 작동하는 전기의자, 효과가 탁월한 약물만 있으면 되니까.
단 하나, 범죄자가 남은 삶을 살아감으로써 누릴 수 있는 효용이 영원히 사라지는 것을 빼고는.
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 따위 밥벌레에게 무슨 효용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어찌 보면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런데 다른 여러 나라의 케이스를 보면, 소위 치안이 잘 정비된 선진국일수록 사형을 아예 형 목록에서 없애거나, 구형은 하지만 집행을 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여기에서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이렇다:
"다른 모든 사회 구성원의 후생이 늘어난다고 해서, 한 사람의 목숨을 뺏는 일이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후생경제학에서 논하는 일종의 가치 판단이 개입된 선호로 볼 수 있다.
만일 그 사회 구성원들의 지배적인 사고방식(= 선호체계)이 이 반대, 그러니까 "다른 사회 구성원들의 비용지출 없이 편익을 늘리기 위해서라면 목숨을 뺏는 일을 할 수도 있다."는 사회적 선호가 형성되어 있다면, 웬만한 강력범죄에는 사형이 구형될 것이다. 또한 이런 선호가 강하면 강할수록, 작은 범죄에 대한 형량도 늘어날 것이다. 굳이 정치경제학이라는 사족을 붙인 것은 이러한 분석의 틀이 가지는 특징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들의 효용과 비용을 근거로 사회현상을 설명하지만 그 함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정치적인 선호체계이다.
이런 생각을 조금 더 발전시킨 것이 최적범죄수준을 논하는 이론일 것이다. 더 안전해지고 싶은가? 연쇄살인범에 주로 구형되는 사형판결의 대상을 강간치상범, 아동성폭행범으로 확대시키고 싶은가? 1억 원을 사기친 놈을 15년 동안 감방에 가두고 싶은가?
그렇다면 비용을 더 부담하라. 그 비용을 부담하는 만큼 사회는 조금 더 안전해질 것이다. 그 "한계적인" 효과도 점점 줄어들긴 하겠지만.
(약간 이야기는 다르지만, 모든 사람들의 형량이 명확한 기준(기계적 판결) 아래 결정되고, 그에 대한 처벌도 사소한 주차위반으로부터 연쇄살인에 이르기까지 제깍 집행되는 사회는 일찍이 올더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에서 보여 준 바 있다.)
물론 이런 말은 범죄의 대상이 된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씨도 안 먹힐 헛소리에 불과하다. 우리 주위의 누가 큰 해를 당했는데 그 옆에 가서 이런 소리를 지껄이는 녀석은 당장 미친놈 취급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이렇다는 얘기다. 결국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비용을 줄이면서 범죄자의 생명을 박탈하는 형벌은 사회후생의 증가로 볼 수 없다는 사회후생함수적 가치판단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점차 확산되고, 최적범죄수준 이론이 더욱 정교해질수록 이런 식의 이론적 접근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나 같은 허접 학부생도 금방 생각해 냈으니, 이미 누군가는 이런 주제로 견고한 수리적 근거가 확립된 논문을 썼을 것이다.
추신: 이번 사건에 한하여, 가장 피해자를 위하는 길은,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피해자와 그 가정에 경제적 지원을 보장하는 일일 것이다. 물론 그것까지 정부에 맡기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세금 더 내."의 딜레마도 같이 발생할 것이다. 그 범위를 어디까지 잡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위와 똑같이 생겨난다는 뜻이다.
피해자의 건강이 하루빨리 조금이라도 회복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