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거창하게 써 놓았지만, 사실 이 문제는 내가 공부라는 것을 해 볼까 하고 마음먹었던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불편함이랄까, 괴로움이다. 그래서 이성적인 글보다는 고백에 가까운 글이 될지도 모르겠다. 몇몇 부분은 주어가 없을 수도 있고, 두서가 없을 수도 있다.
1.
1년쯤 전의 일이다. 수강신청 때문에 평소에 잘 가지 않는 학교의 비공식 포털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내가 전공하는 학문과 학과에 대한 글을 볼 기회가 있었다. 글의 전문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요지는 대충 다음과 같았다. “외교학과 학생들은 역겹다.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패권주의)의 시선으로 가득한 학문을 배우면서 혼자 힘든 척은 다 하고 다닌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보면 너무나도 단편적이고 무지한 반론이었기에 내가 굳이 여기에 대해 반론을 하지 않아도 이미 글쓴이를 비웃고 꾸짖는 여러 댓글이 올라와 있었다. 그 중 가장 압권은 이것이었다. “이건 뭐, 국제정치학이 강대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학문이면 경제학은 완전히 악의 축이라고 할 기세”
아, 한편으로는 뭐 이런 블랙 코미디가 다 있나 싶었지만, 그렇게 재미있지만은 않았다. 우습게도 나는 주전공을 엄밀하고 넓게 공부하기 위해서(그리고 내가 진로를 변경하게 될 때, 일종의 안전장치를 만들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경제학을 복수전공으로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 글쓴이의 논리에 따르면 나는 시장지상주의와 군국주의의 정수(essence)를 온 몸으로 체득한, 친 시장적이며 동시에 친 제국주의적인 반동 학생이었다. 아, 내가 지난 몇 년간 공부했던 것에 따라 말하면 나도 사회에 나가서 대략 이런 사람으로 몰릴 가능성이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자 문득 피식 웃음이 나왔다.
2.
나는 평소 나의 정치적 성향을 딱히 한 가지의 단어, 내지는 한 종류의 표현으로 정의하는 행동을 삼가 왔다. 책을 붙잡고 이론적으로 파고들겠다고 하는 열정도 턱없이 부족했지만, 내 가치관이 일관되고 성숙하게 여물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도 세상 사람들이 얘기하는 대로 “좌냐, 우냐?”를 물어본다면 나는 “우”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잘 정비된 시장에서 사람들이 거래행위를 통하여 사회 전체의 후생을 증진함으로써 사회가 발전한다고 믿으며, 민주주의를 지지하지만 동시에 매우 급진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정치적 혁명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이다. 또한 관료주의, 국가 우월주의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일부 정책결정자들이 규제를 비롯한 이런저런 형태로 사적 영역에 개입하는 행위를 매우 경멸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한국적 의미의 “보수” 혹은 “우파”의 냉전반공주의적인 세계관과 시대에 뒤떨어진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 모형을 찬양하는 국가주의적 경제관, 그리고 계급갈등에 따른 정치균열 - 민주주의 사회에서 지극히 당연한 - 자체를 소모적인 정치싸움으로 손쉽게 치환하는 “기호 1번”들의 행태가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의 다이내믹 코리아, 대~한민국은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사회적 스트레스 없이 속 편하게 투표에 참여하도록 놔두지 않았다. 나는 지난 모든 선거에서 한 번도 “기호 1번”으로 대표되는 모 정당에 투표하지 않았고, 철저히 전략적 사고에 따라 표를 던졌다. 물론 내가 찍은 후보가 적어도 직접적으로 당선되는 일 역시 한 번도 없었다.
아마도 “기호 1번”들이 지난날 서독의 빌리 브란트보다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에 가까운 역사인식을 계속 보이고, 특히 1980년 광주의 비극을 진심으로 참회하지 않는 이상, 내가 그들을 지지하는 일은 죽을 때까지 없을 것이다.
3.
동시에 나는 지난 4년(군대까지 포함하면 6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인간과 국가의 행동을 합리적으로 관찰하고 파악하려는 두 가지 학문에 대해 공부했다(그다지 열심히 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국제정치학과 경제학이 결국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하다. 인간과 국가의 선택을 결정하는 것은 그들의 이상(무차별곡선, 번영, vision의 제시)보다는 현실(예산제약, 국제적 무정부체제 하의 생존)이다. 인간과 국가는 규범적 강제와 이상적 도덕론보다는 현실적 인센티브에 반응한다. 모든 인간이 잘 살게 되고, 평화가 별다른 탈 없이 유지되는 세계는 결코 오지 않는다. 다만 인간은 거기에 한없이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안타깝게도 소수의 학자 그룹과 학생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거나, 이론적으로는 동의하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그것을 행위의 준거로 삼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에 동의하는 사람들조차도 정치적 신념과 이상, 그리고 학문적 탐구와 현실 사이의 괴리와 간극에 괴로워한다. 나도 거기에서는 예외가 될 수 없었다.
4.
국제정치학과 경제학은 반직관적인 동시에 반도덕적이다. 리슐리외라는 양반이 “개인의 도덕과 국가의 도덕은 다르다.”는 말을 한 이래 이제껏 수많은 국제정치학자들이 국가생존이라는 명제의 정당성에 부지런히 실드를 쳐 왔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국가의 도덕을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음의 위협에 맞닥뜨리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다. 성매수산업의 불법화는 범죄조직의 개입가능성을 높이고 성매수 대상 여성을 경제적으로 양극화하며, 정책당국의 세밀한 조정을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합법적 성매매의 허용이 도덕의 탈을 뒤집어쓰는 것은 아니다.
머나먼 타국에서 불귀의 객이 된 고 김선일 씨와 윤장호 하사의 죽음은 안타까웠다. 하지만 나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지 않았으며, 지금도 더 큰 규모의 파병이 이루어져야 했다고 생각한다. 재임기간 내 평균 경제성장률 7%, 평균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달성하겠다고 주장하는 후보의 공약이 일정 부분 먹혀든 것은 아무리 봐도 수준 이하의 현상이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진보정당에게는 안보정책이란 없다. 대신 평화정책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진보정당의 지지자들이나, 잠재성장률이라는 개념을 아무 때나 써 가면서 11%의 경제성장률도 달성할 수 있다는 모 후보의 주장 역시 절망적이었다.
5.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6.
자연과학자들은 과학 연구와 교육에 투입되어야 할 예산을 “무의미한” 군사력 증강에 쏟아 붓는 정부를 얼마든지 도덕적으로 비판할 수 있다. 그들이 연구하는 세계는 도덕 중립적이다. 우주에 네 가지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도덕적으로 괴로워하는 물리학자나, 폭발하는 화산에다 대고 욕을 퍼붓는 지질학자를 나는 만나 본 적이 없다.
팔루자의 개들이 머나먼 한국에서 온 선한 청년에게 오렌지색 눈가리개를 씌우고 그 목숨을 빼앗았을 때, “개인의 도덕과 국가의 도덕은 다르다.”는 리슐리외의 말을 인용한 책을 읽고 있던 나는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 책을 쓴 사람은 이십몇년쯤인가 전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7.
“Grand Bargain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는 동맹국 관료의 말에 “미국의 아무개가 무슨 말을 했든 합의된 것은 합의된 것”이라고 앞장서서 받아치고(대체 왜 대통령이 미국의 아무개가 한 말에 대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대응을 한다 치더라도 차관 수준 이상을 넘어가서는 안 됐다)이나,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고마워하는 동맹국 대통령의 인사치레에 “미국은 베트남전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고 자못 준엄한 충고를 던진 대통령이 국가의 격을 논하는 것은 nonsense에 가깝다.
한편으로,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일정 수준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발언을 미국과의 민감한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와중에 꺼내고, 몇 마디 말과 휘하의 “탈레반” 관료들을 활용하여 무게의 추를 섣불리 중국 쪽으로 옮긴 행위 역시 대통령으로서는 실격에 가깝다. “때로는 질 것이 분명한 싸움을 해야 할 때가 있다.”는 출전을 확인할 수 없는 누군가의 말에 동감하는 것처럼, 나는 돌아가신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지지했고 또 지금도 지지하며 애틋한 마음이다. 그러나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더 괴롭다.
8.
지금 보잘것없는 내 졸업논문을 지도해 주시는 선생님은 그 시절, 원칙에 입각한 평화론,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빠른 현실주의적 길을 찾고자 하셨다. 그러나 그 분에게 돌아온 것은 탁월하고 신중한 외교관이라는 평가가 아니라 “친미주의자, 현실 순응주의자”라는 주홍글씨였다. 친미와 반미를 너무나도 쉽게 나누는 “탈레반”들에 둘러싸인 가운데 선생님이 설 자리는 없었다.
9.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은 매우 간단한 가정을 기반으로 명쾌한 함의를 도출해 낸다. 최상위 폭력의 독점기관이 없는 무정부적인 국제체제 하에서 국가의 1차 목표는 생존이다. 국가는 다른 국가의 의도를 알 수 없으며, 다른 국가가 자신보다 더 많은 이익을 갖는 것을 용납할 수 없고, 세계에는 무수히 많은 불확실성이 존재하므로 국가 간 협력은 거의 달성하기 어렵다. 국제정치는 기본적으로 강대국들의 체스 놀음이며, 약소국의 전략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평화와 공존을 지향하는 모든 국제기구와 제도도 기본적으로는 강대국 간 힘의 분포를 반영하는 하나의 현상이다.
구구절절 간결하면서도 옳은 말들이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근거삼아 대책 없는 이상주의자들이나 평화주의자들을 비판하거나, 햇볕정책을 실패한 유화정책(appeasement policy)의 일환으로 보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 안에 한국이 설 자리는 없다. 한국의 국제정치학만큼 당위적 목표를 위해 이론적 명료함을 운명적으로 버려야 하는 사회과학은 아마 찾기 어려울 것이다.
10.
나 자신이 냉소적인 이론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언제나 가지고 있다. 또한 학문적인 보수성과 현실 한국정치세계에서의 보수성을 명백히 구분하고, 너무나도 많은 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손쉽게 전자에서 후자로 갈아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가졌던 정치적 신념은 점차 괴로움으로 바뀌고 있으며, 현실은 너무나도 냉혹하다. 나는 총성이 울리는 가운데 혼자 돌층계 위에서 플라톤을 읽는 학생이 아닐까. 몇 번의 겨울이 더 지나면 지금보다 더욱 더 외톨이가 될까. 그런 것들이 두렵고 괴롭다. 그래서 그저 가만히 이 길을 걷고 있을 수밖에 없다.
* * *
인문사회 밸리가 아닌 뉴스비평 밸리로 보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또 피식 웃음이 났다.




덧글
페이비언™ 2010/05/16 22:49 #
학문이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막스 베버의 오래된 경구를 생각하면, 우리는 현실과 신념의 사이의 괴리에 괴로워하기보다, 책임윤리에 따라 학문이 비춰주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불완전하게나마 인간의 삶이 개선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게 최선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상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Lucid 2010/05/17 01:23 #
조언 감사합니다. 아마 저도 계속 그런 방향으로 살지 않을까, 싶습니다.
플라도닐 2010/05/17 01:39 #
사회과학쪽에서는 그렇게 표현되지 않지만, 신학자로서의 "니부어"의 세계관이 바로 그런것인거 같아요^^
Lucid 2010/05/17 18:38 #
실제로 니부어의 저작은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현대적 원류 중 하나로 꼽힙니다. ^^
들꽃향기 2010/05/17 01:59 #
잘 읽었습니다. ^^ 분야는 다르지만, 지금 언급하신 고민은 저 역시 어느 정도 동일한 맥락에서 공감이 가는 면이 있어 감히 멘트를 남깁니다.
Lucid 2010/05/17 18:39 #
감사합니다.
shaind 2010/05/17 02:14 #
학문적 탐구의 내용이 올바르다면, 그걸 바탕으로 정치적 신념을 도출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는 않겠죠.
Lucid 2010/05/17 18:40 #
저는 어떤 방향의 정치적 신념이든 기본적으로는 학문적 탐구의 내용과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명랑이 2010/05/17 02:46 #
저는 경영학 한다는 이유로 인문학 하는 친구들에게 "신자유주의의 첨병"이라는 놀림을 받았더랬죠. 저는 뭐... "나는 케인즈 주의를 지지하거든?" 이라고 박박 우기는 중이고요. (지도교수의 영향으로 요새 오스트리아 경제학에 살짝 끌리고도 있지만 말입니다.)
Lucid 2010/05/17 18:41 #
신자유주의라는 표현은 너무나도 광범위하고 종잡을 수 없는 표현이라 개인적으로는 전혀 쓰지 않습니다. ^^;
ArchDuke 2010/05/17 04:03 #
잠시......기호 1번들이 어째서 광주에 대해 책임이 있는건지.....?전툴투하고는 상관없잖슴까? 연좌제도 아니고;
중간에 이라크 이야기 나왔는데 한국의 '탈레반' 관료가 나와서 뜻이 조금 햇갈렸습니다.
Lucid 2010/05/17 18:44 #
전자에 대해서는 노 코멘트. ^^탈레반 관료라는 표현은 참여정부 시대 NSC를 중심으로 한 정책관료 집단의 특성을 포괄하는 표현입니다. 나중에 글을 쓸 기회가 있겠지만 일단 http://sonnet.egloos.com/4170604 이 링크를 참고하시면 감을 잡으실 수 있을 겁니다.
ArchDuke 2010/05/17 19:21 #
아아;; 이해는 했었는데 문장 구성상 순간 착각의 여지가 있었다는 뜻이었습니다.탈레반 관료는 이전에 들었는데 제가 이야기가 잘못 전달이 되었군요;
치이링 2010/05/17 05:25 #
모자른 자신들의 기준을 가지고 학문을 잣대하는 모자른 짓좀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Lucid 2010/05/17 18:41 #
누구든 현실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데, 최소한의 합리성은 그 전에 갖추었으면 좋겠습니다.
파파라치 2010/05/17 07:55 #
좌든 우든 자신들이 세상의 모든(혹은 주요한) 문제들에 대한 명쾌한 해법을 가지고 있는 듯이 떠드는 이들을 보면 얼마나 더 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릴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치인들의 프로파간다야 단순 명쾌할 수 밖에 없지만, 그걸 진심으로 믿어버리는 건 참 위험한 일이죠.
버디 2010/05/17 08:18 #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Lucid 2010/05/17 18:44 #
감사합니다.
2010/05/17 10:42 #
비공개 덧글입니다.
Lucid 2010/05/17 19:54 #
일반화와 인신공격은 지양해야겠습니다만 주로 그런 분들이 나중에는 과거의 신념보다는 현재의 이익을 택하는 경우가 적잖이 있더군요. ^^제가 고민하는 부분이나, 댓글을 남겨 주신 님께서 고민하시는 부분이나, 결국 추상적이고 간단명료화된 "재구성된 현실"에서 추출된 이론을 통해, 다시 복잡한 현실을 지켜볼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특정한 방식으로 논리를 구성하는 방법을 훈련받았지만, 이를 바탕으로 타인에게 "이야기"를 할 때는 조금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현 정부 1년차에 벌어지는 수많은 삽질성 경제정책을 지켜보면서, 이래서 시카고학파가 그렇게 말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답니다. ^^
영춰 2010/05/17 11:21 #
잘 읽었습니다.
Lucid 2010/05/17 18:44 #
감사합니다.
소시민 2010/05/17 11:28 #
저도 아직은 어리고 아는것도 거의 없지만 그래도 중고등학교 때나 대학 초년 때에 비하면현실을 무시한 이상이 얼마나 위험하고 허망한것인지를 어느정도 느껴가고 있는듯 합니다.
앞으로 계속 배워나가야 되겠죠. 그 와중에 이상 자체를 포기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Lucid 2010/05/17 19:13 #
많은 사람들이 실수하고 잘못하는 것을 보면서 저 역시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2010/05/17 13:23 #
비공개 덧글입니다.
Lucid 2010/05/17 19:13 #
아직 학부생입니다.제가 아직 공부가 부족해서 세부적인 방법론이나 논리는 말씀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모순되지 않는 부분을 서로 가져다 쓰는 것보다는 하나의 일관적인 논리체계를 세우는 것이 모든 사회과학에서 가장 시급히 요구되는 과제이며 또 사회의 요구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군비가 최근 10년간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상황입니다. 항공모함이 없긴 하지만요.
잉여 2010/05/17 16:56 #
책임질 필요 없는 아가리질은 너무도 쉽지요게다가 아가리 진보질은 폼까지 나니. 어찌 쉽지 아니하리까
2010/05/17 20:24 #
비공개 덧글입니다.
Lucid 2010/05/17 20:38 #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연구윤리... 같은 것이죠. 자연과학이나 공학에서 요구되는 연구윤리와는 좀 다를 수 있겠습니다. 사회에 대한 책임이라는, 좀 더 포괄적인 영역까지 동반되는 개념이니까요. ^^순수학문의 문제는...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의 발전과정에서 가장 중요시되었던 것이 "근대화"의 달성과 그를 뒷받침하는 "민족문화"의 창달이었기 때문에 그렇고, 또 근래의 시점에서 보면 인문학적 depth를 튼튼히 하지 못한 상태에서 국가적 생존경쟁에 내몰렸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인문학자들의 책임이겠지만, 또 마냥 비판하기도 어렵지요. 정말 진지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학문을 탐구하려는 사람들은 현실적인 어려움과 사회의 몰이해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구요.
크게 보면, 좀더 엄밀하고 고차원적인 논의에 집중해야 하는 학계와 "삶의 존재 기반, 이유"를 인문학을 통해 찾으려 하는 대중들을 연결해 주는 탁월한 "인문학 중개상"들이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것 역시 앞에서 말씀드린 문제 때문일 가능성이 높지요. 척박한 토양에서 어찌 꽃이 필 수 있겠습니까.
체 게바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말씀하신 부분은 상당히 와닿는군요.
socio 2010/05/18 00:58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분야는 다르지만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저 역시 어느정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윤리적으로 한칼에 판단할 수 있는 사안들이 줄어들고 알 수 없는 것들만 더 늘어나더군요.
말씀하신대로 특정 국면의 부정적 측면을 알더라도 그것을 빌미로 전체를 냉소해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고, 괴롭더라도 어둠 속에서 손으로 더듬어가며 길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포기하면 안될 것 같습니다^^
Lucid 2010/05/18 02:21 #
공부하면 할수록(많이 하지도 않았지만ㅠㅠ)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든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냉소적인 인간이 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2010/08/16 12:46 #
비공개 덧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