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포스트는 저의 학사학위논문(undergraduate thesis)인 “무정부체제 하의 갈등: 1980년대 중반 선진국 간 경제협력의 실패에 관한 사례연구 - 플라자 회담에서 루브르 회담까지” (지도교수: 윤영관)를 풀어 쓴 것입니다. 1편과 2편에서는 이론적 논의를, 3편과 4편에서는 1편과 2편을 논리적 근거로 삼아 제 논문의 사례였던 1985~1987년을 다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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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협력이 실패했는가?: 보수구조의 특성
이렇게 1985년에서 1987년까지 협상은 여러 번 시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오이를 비롯한 8명의 국제정치학자들이 제시한 “무정부체제 하의 협력”의 이론적 틀로 이 사례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국가 간 협력과 갈등을 결정하는 보수구조의 형태, 할인율 개념을 적용한 현재이익 대비 미래이익의 가치, 협상전략의 유형에 따른 협력 가능성의 증가/감소가 이 시기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일까?
미국과 일본/서독을 개별 협상 행위자로 가정하면, 이 시기 각국의 보수구조는 상호협력보다는 일방적 배신이 유리한 형태, 즉 죄수의 딜레마에 가까웠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협상의 게임에서 각국은 상대방의 결정(협력할 것인가, 배신할 것인가)에 관계없이 배신을 택함으로써 가장 높은 보수를 얻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협력은 재정적자를 줄일 것을 모두에게 약속하는 것이다. 즉, 불균형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강력한 국제적 commitment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 경우 미국은 일본/서독과 협상을 통해 환율을 적정수준에서 유지하면서 경기부양정책을 시행할 것을 제안할 수 있다. 반면 배신은 재정적자의 규모를 현 상태에서 그대로 유지하면서, 상대방이 경기부양정책을 수행할 것을 지속적으로 종용하는 정책을 의미한다.
일본과 서독의 입장에서 협력은 협상을 통해 달러 대비 엔/마르크 가치의 단계적 절상을 용인하면서, 미국이 제시하는 경기부양정책을 점진적으로 시행하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배신은 재정규모를 현 상태에서 유지하면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재정적자를 축소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일본과 서독이 협력할 경우 미국은 배신을 선택함으로써 재정적자를 감축하지 않으면서 무역적자와 환율을 개선할 수 있고, 그러면 의회의 보호주의와 재정긴축에 대한 압박을 성공적으로 우회할 수 있다. 반면 일본과 서독이 배신을 선택한다면, 미국의 협력은 일본과 서독에게 국내 거시경제정책 조정과 경제협력에 따른 정책공조의 비용을 부과하지 않으면서, 불균형 조정의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이 지게 되는 하책(下策)이다.
일본과 서독의 입장에서도 살펴보자. 미국이 협력한다면 일본은 불균형 문제를 비용부담 없이 해소하고 재정적자를 통해 발생하는 경제적 초과부담을 막을 수 있고, 서독은 EMS의 안정적인 운영에 집중할 수 있다. 또 미국이 배신할 때 일본과 서독이 협력한다면 이는 사실상 일본과 서독에 대한 미국의 무임승차를 허용하는 것이었다.[1]
따라서 1985~1987년의 협상과정에서 미국과 일본/서독의 선택은 협력보다는 배신에 가까운 형태로 나타났다. 일본과 서독은 모두 미국의 경기부양정책 종용에 끈질기게 반대했고, 미국은 재정적자를 줄이겠다는 약속은 이행하지 않으면서 환율조정과 경기부양정책을 일본과 서독에 강요했다.
현재이익과 미래이익의 비교, 협상전략의 특징
미국과 일본/서독은 냉전 이후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 무역과 투자를 오랜 기간에 걸쳐 지속했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미래이익의 할인율이 비교적 낮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즉, 미래이익을 현재이익과 비교해서도 높게 평가하므로 협력할 유인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현재이익과 미래이익의 비교양상은 이러한 일반적 기대와는 다르게 나타났다. 특히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관료조직 내 위상을 중점적으로 고려해야 했던 각국의 주요 정책결정자들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레이건 행정부는 앞서 말한 것처럼 의회의 압력을 우회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베이커는 인위적인 달러 평가절하와 교역 상대국의 경기부양정책 효과에 대해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또 나카소네 수상과 미야자와 재무장관을 비롯한 일본 쪽에서도 엔의 가치안정을 “어떠한 비용을 감수하더라도(regardless of the cost)” 달성해야 하는 최우선 정책목표로 간주했다. 서독 역시 자국이 중심이 된 EMS의 안정적인 운영에 비해 국제수지 불균형의 해소와 환율안정에 낮은 가치를 두었고 미국의 commitment 요구에 끈질기게 저항하였다.
미국과 일본/서독의 협상전략은 어땠을까? 앞서 말한 대로 서로 다른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을 연계하거나(issue linkage) 특정 사안에 대한 단계별 협력의 정도를 분할(decomposition)함으로써 국가 간 협력을 촉진할 수 있다. 그런데 1985~1987년의 협상에서 각 합의문의 이행조항은 단기간에 모든 국가가 동시에 협력할 것을 명시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분할에 반대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내가 협력하고 상대방은 배신하는” 상황에 대한 고려가 필요 이상으로 나타나게 되었고 미래이익에 대한 지속적인 기대 또한 도출되지 않았다. 즉, 각국은 상대방이 약속을 “모두”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단될 경우 자신의 협력 프로세스를 중단할 강력할 유인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1985~1987년의 협력 부재는 “무정부체제 하의 협력” 분석 틀을 적용해 보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미국, 일본, 서독의 보수구조는 상호협력보다 일방적 배신이 높은 보수를 가져다주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 가까웠으며, 각국의 주요 정책결정자들은 미래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관료적 이익과 직결되는 현재의 이익을 더 중요시했고, 모든 사항을 일괄적으로 이행할 것을 합의함으로써 협력의 부재가 지속될 가능성을 높였다.
2010년에 대한 함의
이런 이야기가 2010년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현재 세계경제의 위기와 경제협력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 대공황 시대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경제적 당위론, 국제통화체제에서 달러의 지위가 지속될 것인가에 대한 금융경제학적 예측, 자유로운 국가 간 자본의 이동을 허락하는 작금의 세계화 추세가 유지될 것인가의 여부, 혹은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떠오르는 도전자” 중국의 패권경쟁과 갈등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는 등의 단편적인 차원에서 제시되고 있다.

헤헤헤. 여러분 이거 다 G-20만 성공적으로 개최하면 되는거 아시죠?
그러나 “무정부체제 하의 협력”은 이러한 논의보다 국가 간 협력의 가능성 그 자체에 대하여 의미 있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의 해결은 주요 국가에게 공통의 이익을 제공하는가?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의 보수구조는 현재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각국은 현 시점의 이익보다 경제협력을 통한 미래의 이익을 얼마나 더 높게 평가하고 있는가? 현재의 G-20 체제 하에서 각국은 주요 사안의 연계 및 분할과 같은 협력 친화적인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주석
[1] 일본 재무부의 한 관료는 일본이 협력할 경우 미국이 배신을 선택할 충분한 유인이 있음을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지적했다. “이것은 [환율의] 기준 재설정이 아니다. 이것은 기준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미국은 단순히 채무국의 입장에서 채무가 청산될 때까지 달러[환율]의 기준을 무너뜨리기를 원하고 있다(This is not a rebasement. It's a debasement. The United States, as a debtor nation, simply wants to keep debasing the dollar as long as the debtor status lasts).”
참고문헌
본 논문의 작성에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책은 다음 두 권입니다. 이론적인 논의에 대한 참고를 하고 싶으시면 앞의 책, 1985~1987년의 협상과정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시면 뒤의 책을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Oye. Kenenth A(ed.). 1986. Cooperation Under Anarchy.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Funabashi. Yoichi. 1988. Managing the Dollar: from the Plaza to the Louvre. Washington D.C.: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
그 외의 참고문헌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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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분야가 다르니깐 차이가 나기도 하겠지만 아무튼 신기하네요 ㅎㅎ